이 다리 건너기를 만 번을 하옵소서
만안교
이난희
글을 읽다 멈추고 그대로 집을 나섭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오늘이 마침 일요일입니다
관악역을 나와 걷다 보니
정교하게 몸을 붙인 홍예수문으로
안온한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 들립니다
다섯 칸을 계획했던 홍예수문을
일곱 칸으로 개축한 사정은
예나 지금이나 일어날 수 있는 일
다리 건너편 소나무에
몸을 기댄 바람도 한적하게 흔들립니다
그러려고 하지 않아도
그럴 때가 있지 않나요
만세萬世에 걸쳐
백성들을 편안便安하게 하는 다리라 이름 지은
200여 년 전 임금의 염원이 장대석을 받치고 있습니다
군주의 애민은 염려를 감당하고
염려는 방도를 생각하였으므로
하천을 건너려고 옷을 걷어 올리지 않아도
멀리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다는
흔히 있는 일이 아닌
그런 일이 있었음에 안도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이 닿는 노면에서
편안을 좇다 놓친 것들도 생각합니다
머무는 내내 잠잠합니다
없는 사람을 흠모하는 건
이상한 기분이지만
가끔 찾아오는 불편도
어지간해선 다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문(p. 60-61)
* 만안교는 정조 19년(1795년)에 건립하였다. 정조가 현륭원을 참배할 때 이곳을 지나갔다. 왕이 행차하는 길에는 나무다리를 가설했다가 철거하였는데 백성들의 수고를 염려한 정조의 명으로 돌다리를 놓았다. 서유방이 글을 쓴 만안교비에는 축조 이유, 과정, 만년 동안 백성들이 편안하게 건널 수 있는 다리라는 뜻으로 정조가 이름을 내렸고 하천에서 돌을 채벌할 때 필요한 돌이 나와 경비를 반감할 수 있었다는 것, 공사 참여자 명단 등을 기록하였다. 정조는 일곱 번째 원행부터 만안교를 이용하였는데 서유방은 백성의 수고와 편리를 염려한 왕의 마음에 '이 다리 건너기를 만 번을 하옵소서'라고 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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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4-가을(34)호 <poem> 에서
* 이난희/ 시인. 2010년『시사사』로 등단, 시집『얘얘라는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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