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외 1편
박순원
국민학교 4학년 때 조용하고 조그맣고 깡마르고 빡빡머리에 꼬지지한 친구가 있었다 우리들끼리 몇 명 머리를 맞대고 조용조용 킥킥거리며 놀고 있는데 선생님이 싱긋 웃으면서 다가와 그 친구에게 아버지 뭐 하시냐고 친구는 그냥 웃기만 했다 농담처럼 묻던 선생님이 재차 묻고 정색을 하면서 물었는데도 웃기만 했다 소리를 지르면서 묻자 웃지도 않았다 나중에는 두드려 패면서 물었다 맞으면서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한참을 두드려 패다가 선생님의 분이 안 풀려 식식거리고 있는데 들릴각 말락 입술만 달싹달싹 똥구르마 끌어요
-전문(p.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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깅아지
내가 깅아지라고 하면 사람들은 언뜻 내가 'ㅏ'발음을 못 하는 줄 알았다가 가운데 '아'를 듣고는 아, 자음 앞 또는 뒤에서 'ㅏ' 발음을 못하는구나, 라고 추측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혀는 나의 뇌의 지시를 정확하게 따른 것이다 내가 말한 깅아지는 깅아지이다 나는 깅아지를 부른 것이다 그렇다고 실제로 깅아지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있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용이 있듯이 봉황 해태가 있듯이 차와 질이 교와 활이 유와 예가 있듯이 기린이 그 기린은 아니지만 어느 날 우리 눈앞에 터무니없이 긴 목을 휘청거리며 나타났듯이 어쩌면 강아지보다 약간 모자라는 덜 떨어진 어쩌면 강아지를 뛰어넘는 어쩌면 강아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깅아지가 있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덮어놓고 내 발음상의 문제를 논리적 체계적 과학전으로 지적하기에 앞서
-전문(p.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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