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
박순원
발랄의 랄과 지랄의 랄이
서로 만나서 지랄의 랄이
반갑다 우리는 같은 랄이야
발랄의 랄이 발끈한다
랄이라고 다 같은 랄이 아냐
나는 剌이야 潑剌 분별 좀 해 분별
내 옆구리에 칼 안 보여?
조선 시대 같았으면 넌 죽었어
시대가 바뀌었어 네가 剌인 줄
누가 아냐? 다 랄이지 이제는
그냥 다 랄이야
네 눈엔 안 보이지만 내 속엔
아직 칼 들었어 조심해
다 녹슬어서 들지도 않는
칼 가지고 폼 잡지 마 너만 다쳐
그냥 발랄하게 살아
나는 누가 뭐래도 剌이야
당분간 발랄한 척하고 있지만
언젠가 칼을 쓸 날이 올 거야 그땐
네 관절 마디마디가 온전치
못할 거야 온전치
못할 거야 조심해
그래 그럼 나야 껍데기나 속이나
뒤집고 흔들어 봐야 지랄이야
나는 랄이 필요한 데면
랄랄라 아무 데나 다 가
나는 ㄹ이 두 개나 있어서
너무 행복해 랄 랄 랄
-전문-
읽을 만한가? > 한 문장: 나는 이야기꾼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시인이라 부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이야기꾼이다. 아주 아주 예전에 내가 등단도 하지 않고 시집을 낸 적이 있었다(『아무나 사랑하지 않겠다』, 나남, 1992). 어떤 자리에서 어떤 분이 지나가는 말로 '그래도 시인이 되나?' 나는 속으로 '나를 시인이라고 생각하면 시인인 거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닌 거지 시인이 무슨 벼슬인가?'
-中略-
나는 '아무거나 써 놓고 시라고 우기는 정신 오직 그 장신만이 시를 만든다"라고 쓴 적이 있다. 내 짧은 생각으로는 뭐가 시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굳이 굳이 따지자면 시가 아닌 것을 써야 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정도. 그래서 나는 시에 대해 말을 해야 할 때는 말끝을 흐린다.
나는 이야기꾼이다. 내 이야기 중에 어떤 것들을 글로 적어 시라고 발표한다. 나는 '나의 글이 읽을 만한가'에만 관심이 있다. 내가 내 멋에 겨워 떠들고 다니는 것이야 그렇다고 해도 내 돈이건 남의 돈이건 돈을 들여 활자화할 때는, 누군가에게 읽어 달라고 할 때는 조금이라도 읽을 만해야 하지 않을까? 예전에도 읽을 만해야 누군가 베껴 쓰고, 나무를 깎아 판을 만들고 금속을 녹여 활자를 만들지 않았을까? 내가 쓴 모든 글의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생략되어 있다. '불안 불안 여쭙습니다. 읽을 만하셨는지요?' (p. 시 10-11/ 시론 16) <저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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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4-가을(34)호 <poet/ 신작/ 시론> 에서
* 박순원/ 2005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아무나 사랑하지 않겠다』『주먹이 운다』『그런데 그런데』『에르고스테롤』『흰 빨래는 희게 빨고 검은 빨래 검게 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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