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박판식_이 적은 보물 주머니/ 繡(수)의 秘密(비밀) : 한용운

검지 정숙자 2024. 11. 9. 00:35

 

    의 秘密비밀

 

    한용운

 

 

  나는 당신의옷을 다지어노앗슴니다

  심의도지코 도포도지코 자리옷도지엇슴니다

  지치지아니한것은 적은주머니에 수놋는것뿐임니다

 

  그주머니는 나의 손때가 만히무덧슴니다 

  짓다가노아두고 짓다가노아두고한 까닭임니다

  다른사람들은 나의바느질솜씨가 업는줄로 알지마는 그러한비밀은 나밧게는 아는 사람이 업슴니다

  나는 마음이 압흐고쓰린때에 주머니에 수를노흐랴면 나의마음은 수놋는금실을따러서 바늘구녕으로 드러가고 주머니속에서 맑은노래가 나와서 나의마음이됨니다

  그러고 아즉 이세상에는 그주머니에널만한 무슨보물이 업슴니다

  이적은주머니는 지키시려서 지치못하는것이 아니라 지코십허서 다지치안흔것임니다

    -전문-

 

   * 블로그註:  '때' , '까', '따,의 옛 훈민정음체 쌍자음을 쓰지 못한 점 양해 바랍니다.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원문 대로 옮겼습니다.

 

이 적은 보물 주머니(전문)_박판식/ 시인

시를 보물이라고 믿거나 시가 보물인 사람 넷이 구로에서 만나 시 이야기를 나눈다. 상우 형은 여름이 좋아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해를 다 받아 가면서 담배를 피운다. 우리는 냉면을 먹고 사인 오규원이 살았다고 하는 동네의 마을 공원에 간다. '개봉동돠 장미공원'이라는 팻말만 있는 공원에는 할머니 둘이 잡담을 나누고 있고 오규원도 오규원의 시도 장미꽃도 보지 못하고 다시 땀을 꽤 흘리면서 한 차에 오른다.

  우리는 온갖 보물을 다 파내서 인공의 동굴이 되어 버린 폐광산에 들어간다. 금이 52킬로그램쯤 나왔고 은과 동과 아연은 몇 톤에서 몇 천 톤이 나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파낸 보물은 다 실어 나가고 빈 동굴만 남겨진 셈인데, 지금 우리 같은 관광객을 수도 없이 받아들여서 큰돈을 벌어 주고 있으니 보물은 그것이 없어진 허공에도 보물의 에너지 같은 것이 남아서 보물의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다시 상수가 모는 차를 타고 젊어서 죽은 한 ㅅ인의 문학관으로 간다. 그의 시와 그가 쓰던 물건들을 전시해 놓은 작은 건물 속에서 그가 유럽 여행을 갔을 때 맸던 가방과 금성시계와 그가 아무도 몰래 종이배로 접어 개천으로 떠내려 보냈다는 상장들을 본다.

  구치소 건물은 복합상가가 되고 빈 습지였던 곳은 돔구장이 되고 20년쯤 흘러서 우리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 횡단보도의 긴 신호를 기다렸다가 병준이는 깨진 치아 사이로 술도 몇 잔 흘려보내고 다시 각자의 동네로 흩어진다.

  나에게 누군가 당신, 당신의 모물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적은주머니"라고 말하고 싶다. 만났다 헤어지고 만났다 헤어지고 끝도 없는 인연의 "수놋는금실을따러서" 당신을 다 만나고 싶지만 만나고 오지 않은 것은 만나기 싫어서가 아니라 만나고 싶어서 다 만나지 않은 것이라고만해의 시를 훔쳐서 옮겨본다. ▩ (p. 시 5/ 론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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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4-가을(34)호 <essay 내가 훔치고 싶은 시 한 편> 에서

  * 한용운/ 2013년 『문학동네』로 등단

  * 박판식/ 시인, 2001년 『동서문학』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밤의 피치카토』『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