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허윤정
낙엽
불꺼진 창
벌레 소리
창문에 불을 켠다
-전문-
해설> 한 문장: 허윤정 시인은 세계의 풍경을 매우 간명한 이미지로 제시한다. 그의 시는 세계를 이루고 있는 이미지의 조각들을 세밀하게 펼쳐놓지 않는다. 세계의 이미지를 단순하고 간명하게 제시함으로써 그 이미지가 독자에게 손쉽게 스며들도록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언어의 경제성을 극단화시킨 시 텍스트는 사유나 이미지에서 참신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시는 가을 이미지를 참신하게 드러낸다. "낙엽"이 지고 "불꺼진 창"이라는 쇠락과 어둠의 이미지 속에서 "벌레 소리"가 "창문에 불을 켜"는 이미지를 생성하고 있다. 일상적인 어법이라면 "벌레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창문에 불을 켠다"로 서술되겠으나 이런 경우 아무런 시적 감흥을 주지 못한다. 시인은 벌레 소리의 청각적 이미지와 창문의 불빛이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결합시킨다. 이는 단순히 감각의 전이를 유발하는 공감각이 아니라, 다른 두 감각의 이미지를 응축시키고 전치시킨 결과다. 다시 말해 "벌레 소리가 들린다"와 "누군가 창문에 불을 켠다"가 수평과 수직으로 동시에 결합한다. 수평적 차원에서는 두 문장이 한 문장으로 줄어든 응축(condensation)이 발생하고, 수직적 차원에서는 '누군가'가 '벌레 소리'로 대체되는 치환(displacement)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두 문장은 상호 간에 원관념이 되고 보조관념이 되는 특이한 비유의 시적 기능이 발생한다. 모든 비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기능이 상호 간에 동시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의 이미지가 참신하게 읽히는 이유다. (p. 시 150/ 론192 · 194) <박대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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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영 대역 시집 『이 하루 갈채다 특집방송이다』 2024. 7. 3. <상징학연구소> 펴냄
* 허윤정/ 경남 산청 출생, 1977-1980년『현대문학』 이원섭 추천, 시집『빛이 고이는 잔盞』『별의 나라』『크낙새의 비밀』『자잘한 풀꽃 그 문전에』『無常의 江』『꽃의 어록語錄』, 동시집『꼬꼬댁 꼬꼬』, 시조집『겹매화 피어있는 집』, 시선집 금속 활자공판『거울과 향기』, 영어 번역 시집『Some Where in the Sky』, 한국대표 서정시 100인선『풀잎 그 이름에 대하여』『서래마을 여자』『일백 편의 한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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