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파랑을 얻는 법/ 이미숙

검지 정숙자 2024. 10. 10. 02:19

 

    파랑을 얻는 법

 

     이미숙

 

 

  인디고풀 베어

  꼬박 하루를 물에 담가 두었다가

  무람없는 발길질로

  파랑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

 

  세 살 아이도

  등 굽은 노인도

  물속에 종아리를 담근다

 

  커다란 구리 솥에서

  깨어나 끓고 있는 것은

  물속 가라앉은 하늘과

  모르포나비 뗴의 날갯짓

 

  맞춤한 틀에 나누어 붓고

  기다리다 마음 굳히면

  마침내 파랑이다

 

  누구나 침울해질 때 있어

  골똘히 하나의 색을 바라보면

  욕망의 잎사귀도 함께 일렁여

 

  블루데님 블루보틀커피 성모리아의 길고 낙낙한 겉옷 이브 클라인의 그림 한 점 파라오의 머리카락

 

  어지러워라,

  너는 무엇을 걷어차서

  파랑을 얻는가

     -전문-

 

  해설> 한 문장: 현대 사회의 복잡다단한 시스템은 기의 없는 기표들의 무한한 증식에 따른 것이다. 그것은 언어와 사물이 일치했던, 그렇게 인간과 자연이 상호침투했던 동일성의 세계를 파괴해버렸다. 현대의 수많은 문제와 위기상황들은 자연과의 동일성을 상실해버리고 자연이라는 대상을 폭력적으로 착취한 데 따른 것이다. 시인이 뜬금없이, 인디고풀을 베어 파란색 염료를 얻는 전통적인 방식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구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욕망의 실체를 얻기 위해서는, 마치 파랑색을 얻기 위해 가없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무엇을 걷어차서"야 가능한 것이다. 기의 없는 기표들의 무한 증식을 통한 가짜 욕망의 발현과 실현이 아닌, 이러한 등가교환의 원리에 입각한 타자에 대한 애씀과 몸기울이기가 타자와 더불어 존재하는 진정한 동일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임을 이 시는 새삼 증명해낸다. 비동일성에서 동일성으로 도약하는 시의 언어와 그 세계관이란 그저 언어의 마술적 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등가되는 무언가를 포기하려는 의지에 의한 것이다. (p. 시 18-19/ 론 135 -136) <손남훈/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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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당신의 심장은 너무 멀어 새빨갛다  에서/ 2024. 9. 5. <신생> 펴냄

  * 이미숙/ 충남 논산 출생, 2007년 『문학마당』으로 등단, 시집 『피아니스트와 게와 나』『나비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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