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집 속의 집 외 1편/ 이미숙

검지 정숙자 2024. 10. 10. 03:02

 

    집 속의 집 외 1편

 

     이미숙

 

 

  나나니벌 일가

  안방 바깥쪽 발코니에 흙집 한 채 지었다

  계약서 한 장 주고받은 적 없는데

  아예 살림을 차린 모양새다

 

  월세라도 지불하듯 창틀에 꼬깃꼬깃

  때 묻은 단풍잎 지폐 몇 장

 

  앞뒤 없이 망치부터 들어보지만

  빠듯이 몸 들고 날 문 두 짝

  마치 깊고 검은 눈 같아서

  그 눈빛 비루하지 않고

  너무도 당당해서 순간

 

  삼 층 높이까지 진흙을 물고 와

  이토록 단단한 집을 지은 것이나

  어찌어찌 우리 식구들

  이 집 장만하여 모여 살기까지

  가상한 노력들이 교차해 떠오르는 것이다

 

  슬그머니 망치 든 손을 내린다

  세력이 미미해 보이는 바다

  갓난아이 주먹만 한 작은 집이라

  내 침실 침범해 들여다보고

  간섭만 하지 않는다면야

 

  창 하나 사이에 두고

  팽팽한 두 가구

  한 철 더불어 살아보기로

     -전문(p. 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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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음이 자라는데 대책 없이

 

 

  다가오는 것과 멀어지는 것들이 았다

 

  곧장 들이치는 빗줄기와 고양이 발자국소리 가까워 푸르고 당신의 심장은 너무 멀어 새빨갛다*

 

  어머니 자궁을 지나와 탯줄 끊어내자마자 울음이 먼저 자라고

 

  나는 지구별에 던져진 또 하나의 행성

 

  시공을 둘러싼  에너지와 그 안에서 가로세로 관계 맺기, 태양은 늘 내가 낳은 위성 중심으로 돌아가지

 

  분리되고 팽창하며 다시 새롭게 자라나는 울음들 더운 피 소모하며 은폐 중이다

 

  유리창에 달라붙는 흰 꽃잎들, 그리고 내 침실에서 문득 눈뜬 당신

 

  벚꽃 환상이 다녀갔나,

 

  억지 논리에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아도 눈물겹도록 미워도 봄밤은 연인이 있어야겠다

     -전문(p. 22-23)

 

   * 도플러 효과: 우주에서 가까워지는 것들은 점점 푸르게, 멀어지는 것들은 붉게 보인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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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당신의 심장은 너무 멀어 새빨갛다  에서/ 2024. 9. 5. <신생> 펴냄

  * 이미숙충남 논산 출생, 2007년 『문학마당』으로 등단, 시집 『피아니스트와 게와 나』『나비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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