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속의 집 외 1편
이미숙
나나니벌 일가
안방 바깥쪽 발코니에 흙집 한 채 지었다
계약서 한 장 주고받은 적 없는데
아예 살림을 차린 모양새다
월세라도 지불하듯 창틀에 꼬깃꼬깃
때 묻은 단풍잎 지폐 몇 장
앞뒤 없이 망치부터 들어보지만
빠듯이 몸 들고 날 문 두 짝
마치 깊고 검은 눈 같아서
그 눈빛 비루하지 않고
너무도 당당해서 순간
삼 층 높이까지 진흙을 물고 와
이토록 단단한 집을 지은 것이나
어찌어찌 우리 식구들
이 집 장만하여 모여 살기까지
가상한 노력들이 교차해 떠오르는 것이다
슬그머니 망치 든 손을 내린다
세력이 미미해 보이는 바다
갓난아이 주먹만 한 작은 집이라
내 침실 침범해 들여다보고
간섭만 하지 않는다면야
창 하나 사이에 두고
팽팽한 두 가구
한 철 더불어 살아보기로
-전문(p. 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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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이 자라는데 대책 없이
다가오는 것과 멀어지는 것들이 았다
곧장 들이치는 빗줄기와 고양이 발자국소리 가까워 푸르고 당신의 심장은 너무 멀어 새빨갛다*
어머니 자궁을 지나와 탯줄 끊어내자마자 울음이 먼저 자라고
나는 지구별에 던져진 또 하나의 행성
시공을 둘러싼 에너지와 그 안에서 가로세로 관계 맺기, 태양은 늘 내가 낳은 위성 중심으로 돌아가지
분리되고 팽창하며 다시 새롭게 자라나는 울음들 더운 피 소모하며 은폐 중이다
유리창에 달라붙는 흰 꽃잎들, 그리고 내 침실에서 문득 눈뜬 당신
벚꽃 환상이 다녀갔나,
억지 논리에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아도 눈물겹도록 미워도 봄밤은 연인이 있어야겠다
-전문(p. 22-23)
* 도플러 효과: 우주에서 가까워지는 것들은 점점 푸르게, 멀어지는 것들은 붉게 보인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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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당신의 심장은 너무 멀어 새빨갛다 』 에서/ 2024. 9. 5. <신생> 펴냄
* 이미숙/ 충남 논산 출생, 2007년 『문학마당』으로 등단, 시집 『피아니스트와 게와 나』『나비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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