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서재>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부분)
이장욱/스페이스K 수석 큐레이터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소설이지만 마음공부를 위한 실전 사례집 같은 책이다. 불교를 중심으로 동서양의 철학이 융합된 소설은 싯다르타(고타마 싯다르타와 다름)라는 한 인간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싯다르타는 고타마 싯다르타(석가모니)의 집안인 크샤트리아 계급보다도 사회적 지위가 높은 바라문의 아들이다. 부모를 비롯한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모든 이에게 기쁨을 주던 그는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나기로 한다. 그의 자애로운 아버지는 그토록 아끼던 아들이 자신을 떠난다는 슬픈 소식에 괴로웠지만 결국 하룻밤 만에 그의 결정을 허락한다. 아버지를 등지고 구도자의 길을 선택한 싯다르타는 그 이후로 다시는 아버지를 만나지 못한다.
소설의 무대는 강을 중심으로 정신과 물질, 탈속과 세속으로 나뉘어져 있다. 사색할 수 있고, 기다릴 수 있고, 단식할 수 있었던 자는 강을 건넌 후 결국 색을 좇고 좋은 옷과 정원을 가졌으며 도박에 빠졌다. 유혹에 빠지고 세속에 물들고 도파민의 자극을 좇아 살던 그는 자신의 추한 모습을 마주한 후, 자신이 건넜던 강 너머로 돌아와 나루터의 뱃사공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자신의 고매함과 아들에 대한 정성과 별개로 일어나는 갈등, 떠나려는 자와 떠나보내지 못하는 자의 모습을 보며 집착과 욕망에서 자유로울 날이 없는 우리의 일상을 본다. 그러나 그 고통과 상처는 모두 이유가 있으며 나중에는 그곳에서 새살이 돋아날 것이다. 일찍이 자기 존재의 내면에 삼라만상과 하나이자 불멸의 존재인 아트만이 있음을 알았고, 그 어떤 사문보다 뛰어났으며, 평생 구도자의 길을 걸어온 자 역시 버리기 힘든 집착, 흔들리는 싯다르타의 모습을 보며, 유혹 앞에 무너지고 편한 것에 중독되기 쉬운 나의 나약함을 자책하기보다 감정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된다.
아들이 자라 나와 다른 모서리를 가지게 되었을 때, 나 역시 싯다르타와 같은 시간을 맞을 것이다. 시간은 아이를 성장하게 하고 자식은 결국 자신을 감싸고 있던 나의 보자기를 찢고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나와 다른 존재인, 아니, 다를 것도 없는 그를 조금 더 초연하게 보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p. 15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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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4-여름(90호)호 <예술가의 서재> 에서
* 이장욱/ 스페이스K의 수석 큐레이터, 다니엘 리히터(Daniel Richter, 2022), 캐롤라인 워커(Caroline Walker, 2015) 등의 한국 첫 개인전 유치, 네오라우흐&로사로이(Neo Rauch&Rosa Loy, 2021), 헤르난 바스(Haman Bas, 2021) 등의 전시 개최. 소더비 홍콩에서 한국 추상작가 제여란 개인전(2023. 3)을 기획.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국회의원회관 등 국회의원회관 등 자문 및 심사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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