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미소 외 1편
황경순
영월 창령사 터에서
천 년 동안 묻혀 있다 살아난 오백 나한들이
나를 향해 웃고 있다
단 하나도 같은 표정 없이
나를 향해 묘하게 웃고 있다
오백 나한 중 겨우 살아난 이들의 미소가 이럴진대
깨지고 부서진 남은 나한들의 표정은 어떨까
누가 강제로 저 미소들을 짓밟았을까
모나리자의 미소도 좋고, 크메르의 미소도 좋지만
우리 와당瓦當 수막새 신라의 미소*처럼
친근하고 해탈의 경지에 이른 천태만상 오백의 얼굴
창령사倉嶺寺 아라한阿羅漢은
두고두고 영원을 향해 저렇게 웃었으면 좋겠다
이 없이 잇몸으로 사시던 외할머니 얼굴
이제는 가물거리는 아버지 얼굴
이 고생 저 고생 한 많은 어머니 얼굴
이제 회갑이 되어 속없이 웃는 남편 얼굴
까르르 웃는 딸들 얼굴까지도
이 사람 저 사람 스쳐 가는 사람까지도 그렇게
이 표정 저 표정 따라 하다 보니
아라한阿羅漢이 되었나
거울 속 내 얼굴이 환해진다
-전문(p. 50-51)
* 신라의 미소: 신라 영묘사 출토, 웃는 여자 얼굴 수막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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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새가 되는 시간
훠이이 봄바람에 꽃비 내리면
벚꽃은 낱낱이 부서지고 흩어진다
그윽한 향기도
낭창낭창 흐르던 다섯 꽃잎의
우아한 자태는 사라져도
새로운 몸이 생긴다
더 이상 떨어질 걱정도 없이
그리운 나무 밑에서
기다란 띠 모양 꽃무덤이 생긴다
꽃무덤은 바람 따라 춤을 추며
마음대로 모습을 바꾸고
바람 따라 훨훨 날아간다
꽃이 진다고
세상이 끝난 것이 아니다
새 세상을 위한
아름다운 비행을 한다
-전문(p. 10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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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 꽃이 새가 되는 시간』에서/ 2024. 8. 12. <문학의전당> 펴냄
* 황경순/ 경북 예천 출생, 대구에서 성장, 2006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나는 오늘, 바닷물이 되었다』 『거대한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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