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독립▼/ 최백규

검지 정숙자 2024. 8. 5. 18:54

 

    독립

 

    최백규

 

 

  컨베이어 위로 구름이 흘렀다 빵과 우유를 삼키다 학교에서 제적되었다는 문자를 읽은 날이었다 그해 나는 자주 침상에서 뒤척였고 여러 공장을 번갈아 다니며 최저임금마저 떼였다 조립과 검수와 포장의 연속이었다 철야 후 공구 골목에서 이따금 쇳소리가 울리고 아침 공기도 적당히 산뜻했다 영화 상영 직후같이 비슷한 표정의 일용직들이 길 건너편으로 흩어지는 모양이 어지러웠다 그 시절에는 다세대주택 창고에 식물처럼 세 들아 살아도 괜찮았다 배가 고프면 수돗물을 마셨고 밑창이 떨어진 신발을 신으면 빗물에 발이 젖어 뿌리부터 썩어 들어갔다 학교에서 제적된 것보다 천장에서 비가 떨어지는 것이 훨씬 큰일이었다 낮이면 식탁 위로 밤이면 이불 위로 쏟아졌다 먹고살기 위해 그곳에서 자고 일어나 다시 일하러 가는 게 지겨웠다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똑같거나 더 최악일 거라는 사실도 이해했다 내가 벌여온 짓들이 나를 망치고 있었다 숨을 참았다 한 발만 더 내리면 열차가 즐겁게 나를 쓸어갈 수 있을 것이었다     

    -전문, (p. 65)

 

   제목 끝에 [] 표시가 된 작품은 시인들이 직접 뽑은 1~2년 내의 근작대표시입니다. 이 작품은 현대시 작품상 후보작으로 검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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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4-4월(412)호 <신작특집> 에서

  * 최백규/ 2014년 『문학사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