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주년을 1년 앞두고
양왕용/ 시인,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양왕용_ 내년이면 선생님께서 탄생하신 지 꼭 100년이 되고 황망히 세상을 떠나신 지도 19년이 됩니다. 지난해 초부터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저는 지난해 7월초 선생님의 고향 통영에 갔습니다. 월간 『시』에 선생님이 탄생하신 1922년 11월 25일부터 2004년 11월 29일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작고하실 때까지 선생님이 머문 공간을 일일이 탐사하는 글을 연재해 보기 위한 첫걸음으로 선생님의 고향을 찾았습니다. 출판사와는 탄생 100주년 전에 탐사 결과를 책으로 엮기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선 선생님이 탄생하신 생가를 방문했는데 선생님의 생가에 대한 기억은 어떠하신지요?
김춘수_ 1922년 11월 25일(음력 9월 24일) 내가 태어났을 때 내 생가 통영시 동호동 61번지는 바다와 무척 가까웠네. 300평에 가까운 대지에 선친이 내가 태어나기 얼마 전 손수 지어 원래 살던 산양면 금평리에서 이사를 하셨다네. 선친은 할아버지가 통영서 알아주는 만석꾼 부자였네. 그래서 기와집으로 우람한 윗채에 가운데 마당이 있고 길가 쪽으로 사랑채가 있었네. 선친께서는 늘 사랑채에 계시면서 동기童妓를 불러다가 잔치를 벌이기도 하고 자주 사람들을 청해서 담소를 즐기곤 하셨네. 그런데 그 생가를 1968년 봄과 여름에 선친과 모친이 연달아 돌아가신 후 감당하기 힘들어 1978년 사랑채부터 차례로 처분하고 지금은 주위에 도로가 확장되어 많이 손상되었다네. 사랑채는 다른 곳으로 팔려 가고 본채는 주인이 두 번이나 바뀌었으나원형을 다소 가지고 있다고 하네. 그러다가 2007년 무렵 통영시에서 생가를 구입하여 그 자리에 기념관을 짓는다고 하다가 지금은 흐지부지 된 것으로 알고 있네. (P. 264-264)
양왕용_ 선생님이 일본 동경의 간다神田 고서점에서 우연히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을 구입하여 읽고 시에 눈뜨게 되었으며 일본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요. 사실 코로나19만 아니면 일본대와 세다가야世田谷 하숙집 근처와 선생님이 윤동주 시인처럼 붙잡혀가 고생한 세다강 경찰서와 요코하마 일본 헌병대 자리 등에도 가보고 싶으나 코로나19가 진정되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시는 여러 번 발간된 전집에 거의 수습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무의미시 이전의 초기시와 무의미시에 대한 연구는 대한민국의 어느 시인에 못지않게 평론, 석 · 박사 논문, 그리고 학술 단행본 등으로 많이 연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시 말고도 시 비평과 이론서 그리고 에세이, 심지어 소설과 동화 등 많은 산문을 썼습니다. 그 가운데 시론집들과 에세이들도 전집에 수습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몇 편 안 되는 학술논문과 시 월평, 대구의 신문들과 도정 홍보지에 쓰신 에세이 가운데 많은 것들이 전집으로 수습되지 않고 있습니다. 방대한 양의 에세이 때문에 선생님이 돌아가신 직후인 2005년 1월에 현대문학사에서 낸 에세이집은 전집이 아니라 김춘수 대표에세이' 『왜 나는 시인인가』라고 하고 있습니다.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완벽한 에세이 혹은 산문 전집이 나와야겠지요.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산문을 쓰셨는지요?
김춘수_ 나는 대학 교수가 되기 전 대학 졸업장조차 없는 처지여서 대학교수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시만 창작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평론을 많이 썼네. 근 10년(1952~1960)의 시간강사 시절 강의 노트와 『문학예술』에 연재한 글로 『한국현대시형태론』(1958. 해동문화사)이라는 첫 저서를 엮어 1950년 4월에 국어국문학과 교수 자격을 인정받았네. 1961년 경북대학교 전임이 되던 해 6월에는 역서 『신문예』에 연재한 프린트판 『시작법』을 『시론』(문호사)으로 엮었네. 아마 이 책으로 자네의 학부 시절(1963~1967)에 강의를 하였을 것이네. 대학교수가 되고 난 뒤에는 순수시 이론과 내 나름의 시론을 정립하기 위해 각종 문예지의 청탁에 응했네. 그리고 나의 산문 특히 에세이는 문명비평이나 현실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가지고 있네. 이는 사르트르가 이야기한 '시는 사물이고 산문은 참여'라는 입장에도 부합하는 것이라 생각하네. 나를 순수시 혹은 무의미시만 쓴 시인이라 하여 나에게 상황의식이나 엯의식이 결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에게 나의 에세이를 정독해 보라고 반문하고 싶네.
양왕용_ 탄생 100주년에는 에세이 전집이 간행디어 선생님의 에세이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전개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완성하지 못하고 가신 자전소설 「꽃과 여우」에서 언급한 것처럼 만년의 정치 참여 경이에 대한 것도 자세히 밝혀지기를 소망합니다. 저 역사 탐사의 글에서 시세계보다 선생님께 다가온 예기치 못한 역사의 격랑(일제 강점기 말 감행, 해방 공간의 가산 몰락, 6.25의 개인적 비극, 3 · 15 마산의거 현장 체험, 신군부에 의한 정치 참여)에서 선생님께서 어떻게 대응하셨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P. 267-2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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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1-7월(629)호 <가상 인터뷰 · · · 김춘수 시인>에서
* 양왕용/ 시인,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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