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계간 파란』2020-여름호/ 좌담_이후의 정념들(발췌)

검지 정숙자 2020. 6. 14. 08:40

    <좌담discussion>

 

    이후의 정념들(발췌)

 

    

  장석원: 다들 아시겠지만 '파란' 모토 중 하나를 말할게요. 시가 좋은데 세대, 성, 에콜 같은 기준으로 분리되어 특정 영역에 갇힌, 읽히지 않는, 잘 보이지 않는 시인들을 찾자.

  이찬: 그런데 다른 문제가 하나 더 있는 것 같아요. 그걸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전문가 혹은 대중이라고 하는 기준과 좌표를 여기다 세워 놓는 것도 이상하지만, 이것도 어떤 세대 차이 또는 세대 의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컨대 지금 젊은 시인들 혹은 시인 지망생들이 이 시집을 따라가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유망한 젊은 시인들이 시인의 미학과 감수성과 세계관을 추구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 같고요. 그러니까 좋은 시와 새로운 시, 그리고 시를 둘러싸고 있는 전문성과 대중성의 문제, 나아가 문단의 흐름이나 영향력과 좋은 시의 기준과 좌표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고민을 우리가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그런 문단의 지배력이나 영향력의 변두리에 놓여 있는 좋은 시인들과 작품들을 우리가 어떻게 적극적으로 발굴할 것인가 하는 그런 문제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문제는 제가 가지고 있는 감각과 감수성과 미학적 기준이 정진혁 시인의 그것과 맞닿는 데서 오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이상하게도 10년 정도 선배 세대의 감수성이 나쁘지 않거든요. 더구나 이해도 되고 좋아요. 좀 더 생각해 보면, 이 시인이 수미일관하게 품고 있는 농경 사회의 상상력 역시 제 유년 체험과 맞닿아 있어서 좋은 것 같다는 느낌도 드네요.

  장석원: 깜짝 놀라지 않아요? 어, 내가 왜 좋아하지? (웃음) 

  이찬: 이분이 저보다 10살이나 더 많으시더라구요. 교사이셨던 것 같고, 그럼 이제 정년 퇴임하실 연세에 가까우신 것 같은데, 그럼 실상은 우리 가운데 가장 연장자이신 장석원 시인이나 저하고도 실상 세대 차이가 난다고 봐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이현승: 나이가 들수록 언어가 바뀔 수밖에 없고요, 아무래도 시인들은 노화의 속도가 다른 장르보다 좀 빠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정진혁 시인 같은 연배에 이렇게 절제된 깔끔한 서정시를 쓰는 것도 상당히 드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미적 거리를 유지할 줄 아는, 자기 객관화가 가능한 시인인 거죠. 경험과 사유로 다져진 자기 세계가 일정하다, 이런 느낌입니다.

  장석원: 「동인천 삼치구이 골목에서」를 보면요, 서민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관점이 제시되어 있어요. 감정과 언어를 다루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어요.

  이현승: 이런 시인들의 시를 골고루 다루고 이야기하는 것도 우리 좌담의 앞으로의 과제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찬: 미래파 이후로 우리 시인들에게 어떤 강박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자들에게 쉽게 읽히거나, 특히 전문적인 독자, 비평가에게 단번에 뚫려버리는 시는 안 좋은 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강박을 안 가졌으면 좋겠어요. 너무 많이 비꼬아서, 너무 많이 틀어서, 너무나 개인적인 메타포나 상징을 많이 쓰는 것이 그렇게 좋은 방향으로 작용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읽다 보면 도대체가 이해를 할 수 없는 시들이 너무 많다는 게, 그게 좋은 현상 같진 않거든요. 또한 이러한 감각은 미래파가 만든 일종의 도그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다고 우리 시인들이 정진혁 시인처럼 똑같이 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절대는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어떤 다른 지점, 다른 기획에 대한 고민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독자들에게 쉽게 읽힌다고, 비평가에게 단번에 뚫렸다는 것이 좋은 시와 나쁜 시를 검증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 말이에요. 하나의 예를 들어 보면, 신미나 시인 같은 경우 젊은 시인인데도 불구하고, 농경 사회의 상상력이 전면화된 경우라고 할 수 있고, 그 감각이나 감수성, 그리고 제재로 활용되는 에피소드들 역시 현실과의 접면이 넓고 깊으면서도 작품이 결코 난해하지 않거든요. 물론 그 시인은 워낙 뜨겁고 유니크한 지점이 있을 뿐더러 마치 접신의 경험을 직접 갖고 있는 것만 같은, 그런 실감과 생동감이라는 탁월한 지점을 갖고 있으니까요. 나아가 미당과 유사한 포에지 같은 것이 곳곳에서 넘쳐흐르는데, 이를 구세대와 유사한 감수성을 갖고 있으니 낡았다고 그렇게 펑가할 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구세대의 감수성과 감각과 방법론을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낡은 미학이나 감수성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좀 더 섬세하고 미시적인 미학적 기준이나 예술적 탐구가 반드시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장석원: 쉬운 게 나쁜 건 아니니까요. (p. 228-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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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파란』 2020-여름호 <discussion>에서  

  * 참가자/ 고주희  김건영  이찬  이현승  장석원  전영규  조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