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가게(부분)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 47세)
나는 모든 것에 실패했다.
아무런 목표도 세우지 않았기에, 어쩌면 그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었는지도.
집의 뒤편으로 난 창문을 통해
나는 내가 배운 교훈으로부터 내려왔다.
큰 뜻을 품고 시골까지 갔으나,
거기서 발견한 건 그저 풀과 나무뿐,
어쩌다 사람이 있다 싶으면 남들과 다를 바 없었다.
창가를 떠나, 나는 의자에 앉는다. 무슨 생각을 해야 할 것인가?
내가 뭐가 될지 난들 알겠는가, 내가 뭔지도 모르는 내가?
내가 생각하는 게 된다고? 하지만 너무나 많은 게 될 생각인 걸!
너무나 많은 이들이 똑같은 게 되려 하는데, 그렇게 많이는 있을 수 없다!
천재? 이 순간에
10만 개의 뇌가 나처럼 천재라고 꿈속에서 상상하지만,
누가 알랴, 역사는 단 한 명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며
미래의 수많은 성취들의 거름일 뿐이리라.
아니, 나는 나 자신을 믿지 않는다.
모든 정신 병동마다 확신에 찬 정신병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 아무런 확신이 없는 나는, 그들보다 더 옳을까 아니면 덜?
아니, 나는 나 자신조차······
세상의 수많은 다락방과 다락 아닌 방들 중
이 시각에 자칭 천재들이 꿈꾸고 있지 않는 곳이 몇이나 될까?
드높고 고귀하고 비상한 열망들
그래, 정말로 높고 고귀하고 비상한,
게다가 실현이 될지 모르는 것들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단 한 번도 진짜 햇빛을 못 보거나, 들어 줄 귀 하나 못 찾을까?
이 세계는 정복하려고 태어난 자를 위한 것이지
정복할 수 있다고 꿈꾸는 자를 위한 게 아니다, 설사 그들이 맞다 해도
나는 나폴레옹이 이룬 것보다 더 많이 꿈꿨다.
나는 가상의 품에 예수보다 많은 인류애를 품었다.
나는 그 어떤 칸트도 쓰지 못한 철학들을 비밀리에 만들어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리고 아마 영원히, 다락방의 아무개,
비록 거기 살지는 않지만,
나는 항상 무언가를 위해 타고나지는 않은 사람일 것이고,
나는 항상 단지 자질은 있었던 사람일 것이며,
나는 항상 문 없는 벽 앞에서 문 열어 주길 기다린 사람일 것이다.
닭장에서 무한의 노래 시들을 노래한,
덮여 있는 우물에서 신의 목소리를 들은.
나 자신을 믿느냐고? 아니, 나는커녕 아무것도
뜨거운 내 머리 위로 자연을 들이부어라
그 태양, 비, 그리고 내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
나머지는 오려면, 아니 와야 하면 오고, 아니면 말아라.
별들의 심장의 노예들, 우리는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까지는 세계를 정복했었지.
깨어났더니, 그것이 흐릿하고
일어났더니, 그것이 낯설다,
우리가 집을 나서자, 그것은 지구 전체이며,
또한 태양계이자 은하수이자 무한이다.
(어린 소녀야, 초콜릿을 먹어,
어서 초콜릿을 먹어!
봐, 세상에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모든 종교들은 제과점보다도 가르쳐 주는 게 없단다.
먹어, 지저분한 어린애야, 어서 먹어!
나도 네가 먹는 것처럼 그렇게 진심으로 초콜릿을 먹을 수 있다면!
하지만 나는 잠시 생각을 하고 선, 은으로 된 종이, 은박 포장지를 뜯자마자
모두 다 땅에 버려 버린다, 삶을 버렸던 것처럼.)
(p. 45-51)
<※ 블로그주: 포르투갈어-원문은 책에서 일독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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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시인선 25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에서, 2018. 10. 5. 1판 1쇄/ 2020. 2. 10. 1판 4쇄 <민음사> 펴냄
* 페르난두 페소아/ 포르투갈의 모더니즘을 이끈 대표 시인. 헤럴드 블룸은 서양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 26인 가운데 셰익스피어, 괴테, 조이스, 네루다와 더불어 페르난두 페소아를 꼽는다. 일생 동안 70개를 웃도는 이명異名 및 문학적 인물들을 창조하고 독창적인 글을 썼다. 포르투갈어와 영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 및 서로 다른 문체를 구사하였으며, 시, 소설, 희곡, 평론, 산문 등 많은 글을 남겼다./ 1988년 리스본에서 태어난 페소아는 일찍 친아버지를 잃고, 외교관인 새아버지와 함께 가족 모두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주했다. 1905년 홀로 고향으로 돌아와 리스본대학교에 입학했으나 곧 학업을 중단하였다. 일생을 마칠 때까지 '무역회사의 해외 통신원'으로 무역 서신을 번역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평생 여러 잡지와 신문을 통해 다량의 산문과 시를 발표했으나, 생전에 출간한 포르투갈어 저서는 시집 『메시지』가 유일하다./ 1915년 포르투갈 모더니즘 문학의 시초인 잡지 『오르페우』를 창간했다. 오랫동안 틈틈이 적은 단상을 모아 『불안의 책』을 출간하려 했으나 실현하지 못했다./ 1935년 47세의 나이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 엄청난 양의 글이 담긴 트렁크가 발견되었고, 현재까지도 분류와 출판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 김한민/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유리피데스에게』 『혜성을 닮은 방』 『공간의 요정』 『그림 여행을 권함』 『책섬』 『카페 림보』 『비수기의 전문가들』 『아무튼 비건』 『사뿐사뿐 따삐르』『웅고와 분홍돌고래』 등의 책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소속으로 페루에 파견되어 학생들을 가르쳤고, 독일에서 작가 활동을 하다가 귀국해 계간지 『엔분의 일(n/1)』편집장으로 일했다. 포르투갈 포르투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했고, 리스본 고등사회과학연구원(ISCTE) 박사과정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산문집 『페소아와 페소아들』, 시선집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를 엮고 옮겼으며, 페소아와 그의 문학, 그리고 그가 살았던 리스본에 관한 책 『페소아: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의 화신』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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