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 송시(부분)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 47세)
지나가는 갈매기 한 마리,
그리고 내 다정함은 한층 더하다.
하지만 이 모든 시간 동안 나는 무엇에도 주목하고 있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오로지 피부를 통한 인상일 뿐이었다. 마치 애무
같은.
이 모든 시간 동안 나는 내 머나먼 꿈에서 눈을 뗴지
않았다.
강변의 내 집에서,
강변의 내 유년에서,
밤에 강쪽으로 난 내 방 창문들에서,
그리고 물 위에 흩뿌려진 달이 평온······!
아들을 잃은 이유로 나를 사랑해 주던, 나의 늙은 이모······,
내 늙은 이모는 자장가를 불러서 날 재워 주곤 했지······
(그러기엔 내가 이미 너무 커 버렸는데도)
나는 회상을 하고 내 마음 위로 눈물이 떨어지고 삶으로
그걸 닦지,
그리고 내 안에서 바다의 산들바람이 이네.
가끔은 그녀가 「카트리네타 호」를 불러주곤 했지:
저기 카트리네타 호가 가네
바다의 물결 위로······
그리고 다른 때는, 향수에 푹 잠긴, 굉장히 중세적인 멜로디의,
「아름다운 공주」였지······ 다시 기억나는군, 가여운 늙은
목소리가 내 안에서 일어났지
그리고 그 뒤로는 내가 그녀를 별로 기억하지 않았다는
것도 기억나, 그녀는 그렇게 나는 사랑해 줬건만!
그녀한테 얼마나 소홀했던가 그래서 결국 나는 내
인생에서 뭘 했던가?
「아름다운 공주」였는데······ 나는 눈을 감고, 그녀는 노래했지,
아름다운 공주님이
저기 정원에 앉았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달 가득한 창문을 보곤 했지
그러고는 다시 눈을 감고, 이 모든 것 안에서 나는 행복했었지.
아름다운 공주님이
자기 정원에 앉았네,
황금색 빗을 손에 쥐고,
자기 머리카락을 빗고는 했네······
아 내 유년 시절이여, 사람들이 부숴 버린 인형이여!
내 과거를 향해 여행을 할 수만 있다면, 그 집과 그 감정으로,
영원히 거기서, 영원히 행복한 아이로 남을 수만 있다면!
하지만 이 모든 건 과거였지, 오래된 거리 골목의 가로등불.
이걸 생각하노라니 추워지고, 구할 수 없는 무엇 때문에
허기를 느껴.
이걸 생각하노라니 나도 모를 터무니없는 회한이 밀려와,
아 엇갈리는 감각들의 느린 소용돌이여!
내 영혼의 혼란스런 것들로 인한 미세한 현기증!
조각나 버린 분노. 아이들이 갖고 노는 실타래 같은 부드러움들,
감각의 눈들 위로 상상력의 거대한 붕괴들,
눈물들, 부질없는 눈물들,
영혼의 얼굴을 스치는 모순의 산들바람들······
(p. 201-205)
가엾은 증기선이 나를 뭉클하게 한다. 너무나 겸손하고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가는구나.
알 수 없는 어떤 주저함이 있는 것 같다, 정직한 사람이라서,
어떤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사람처럼.
저기로 간다 나 있는 부두 앞을 떠나면서.
저기로 간다 유유히, 옛날 옛적에
배들이 있었을 곳을 지나면서······.
카디프로? 리버풀로? 런던으로? 상관없다.
그저 자기 의무를 다할 뿐. 우리가 우리 것을 하듯이.
아름다운 인생이여!
좋은 여행이 되길! 좋은 여행이!
좋은 여행이 되길, 나의 가엾은 우연의 친구여, 내 꿈의
열병과 슬픔을 너와 함께 데려가라는 부탁을 들어준,
너를 보고 네가 가는 걸 볼 수 있도록, 나를 다시 삶으로
되살려 준 너.
좋은 여행이 되기를! 좋은 여행이 되기를! 인생이 바로 이런
거지······
오늘, 리스본의 항구로 떠나는 길에
네 곧은 자세가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 없고, 그렇게
하릴없이 아침과 어울리는구나!
그래서 나는 너한테 신기한 애착을 갖고 있고 참 고마워······
뭐가 그래서냐고? 누가 알겠어 그게 뭔지······! 어서 가······
지나 가······
미세한 떨림과 함께,
(트-트-트-트----트-----트······)
내 안의 타륜이 멈춘다.
가거라, 느린 증기선아, 어서 가고 여기 머물지 말아······
나를 떠나거라, 내 시야에서 없어져,
내 마음 안에서 나가,
멀리, 저 멀리, 신의 안개 속으로 사라져,
사라지고, 나를 떠나 네 갈 길을 가······
내가 누구길래 울고, 너에게 질문을 던지나?
내가 누구라고 너에게 말을 걸고 너를 사랑하나?
내가 누구라고 너를 보는 것만으로 심란해지나?
부두에서 멀어지면서, 태양은 점점 커지고, 금빛으로
떠오른다,
부두 건물들의 기와지붕들이 빛난다,
도시 이쪽 편이 모두 반짝거린다······
떠나, 나를 두고 먼저
눈에 띄게 분명한, 강 한복판의 배가 되었다가,
그다음에는 작고 검은, 항구 입구로 가는 배가,
그다음에는 수평선의 희미한 점 하나로, (아 내 괴로움!)
점점 더 희미해지는 수평선의 한 점으로······
나중에는 아무것도 없고, 그저 나 그리고 내 슬픔만,
그리고 이제 햇빛 충만한 거대한 도시만
그리고 이미 배 없는 항구처럼 벌거벗은 현실적인 시간,
그리고 마치 돌아가는 나침반 같은, 기중기의 느린 회전이,
나도 모를 어떤 감정의 반원을 긋는다
내 영혼의 먹먹한 침묵 속에······
(1915년 봄)/ (p. 201-205(end) )
<※ 블로그주: 포르투갈어-원문은 책에서 일독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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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시인선 25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에서, 2018. 10. 5. 1판 1쇄/ 2020. 2. 10. 1판 4쇄 <민음사> 펴냄
* 페르난두 페소아/ 포르투갈의 모더니즘을 이끈 대표 시인. 헤럴드 블룸은 서양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 26인 가운데 셰익스피어, 괴테, 조이스, 네루다와 더불어 페르난두 페소아를 꼽는다. 일생 동안 70개를 웃도는 이명異名 및 문학적 인물들을 창조하고 독창적인 글을 썼다. 포르투갈어와 영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 및 서로 다른 문체를 구사하였으며, 시, 소설, 희곡, 평론, 산문 등 많은 글을 남겼다./ 1988년 리스본에서 태어난 페소아는 일찍 친아버지를 잃고, 외교관인 새아버지와 함께 가족 모두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주했다. 1905년 홀로 고향으로 돌아와 리스본대학교에 입학했으나 곧 학업을 중단하였다. 일생을 마칠 때까지 '무역회사의 해외 통신원'으로 무역 서신을 번역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평생 여러 잡지와 신문을 통해 다량의 산문과 시를 발표했으나, 생전에 출간한 포르투갈어 저서는 시집 『메시지』가 유일하다./ 1915년 포르투갈 모더니즘 문학의 시초인 잡지 『오르페우』를 창간했다. 오랫동안 틈틈이 적은 단상을 모아 『불안의 책』을 출간하려 했으나 실현하지 못했다./ 1935년 47세의 나이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 엄청난 양의 글이 담긴 트렁크가 발견되었고, 현재까지도 분류와 출판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 김한민/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유리피데스에게』 『혜성을 닮은 방』 『공간의 요정』 『그림 여행을 권함』 『책섬』 『카페 림보』 『비수기의 전문가들』 『아무튼 비건』 『사뿐사뿐 따삐르』『웅고와 분홍돌고래』 등의 책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소속으로 페루에 파견되어 학생들을 가르쳤고, 독일에서 작가 활동을 하다가 귀국해 계간지 『엔분의 일(n/1)』편집장으로 일했다. 포르투갈 포르투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했고, 리스본 고등사회과학연구원(ISCTE) 박사과정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산문집 『페소아와 페소아들』, 시선집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를 엮고 옮겼으며, 페소아와 그의 문학, 그리고 그가 살았던 리스본에 관한 책 『페소아: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의 화신』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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