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웹진시인광장 특집대담
- 주제: 시가 마음을 치유(治癒)할 수 있는가?
▣ 사회: 이 령 시인 (본지 부주간)
◼대담: 정숙자, 정하해, 김희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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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맞아 세계는 지금 총체적 혼란의 시국에 직면해 있습니다. 정치, 경제는 물론 인간의 생명이 위협 받는 최대의 위기에 봉착 했고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질병 확산의 예방적 조치가 일부에서는 사회 분란을 조장하는 수단으로까지 악용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국을 맞아 부득이 온라인 대담을 진행하게 되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2020년 웹진시인광장 특집대담은 우리 문단의 중진, 중견, 신예를 대표하는 정숙자, 정하해, 김희준 시인을 모시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정신적 결속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미약하지만 문학인, 특히 시인들의 역할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부터 세분의 선생님들과 온라인 대담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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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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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 반갑습니다.
2020년 웹진시인광장 특집대담의 진행을 맡은 이령입니다. 오늘 시가 마음을 치유治癒할 수 있는가? 라는 주제로 정숙자 시인, 정하해 시인, 김희준 시인을 모시고 대담을 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요즘 코로나 여파, N번방 사건, 미투 사건 등, 혼란한 시국입니다만 위기의 시기 반대급부로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또 시인들의 책무이기도 하지요. 먼저 근황을 여쭙겠습니다.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정숙자: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그간 별고 없으셨는지요? 저는 무사히 지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번지기 전에도 자가격리에 가까운 일상이었고요.(ㅎㅎ) 그러고 보니 현주소가 이령 시인은 경주, 김희준 시인은 통영, 정하해 시인은 대구(!)…. 사회자님 혜안이 놀랍습니다. 말 없는 가운데서도 이렇게 위안과 격려를 하실 수 있군요. 지금은 서울도 초긴장 상태이지만, 대구 시민뿐 아니라 전국으로 확산된 ‘코로나19’가 하루속히 사라지기만을 축원하고 있습니다.
◼정하해: 네 안녕하세요.
이천 이십 년의 봄은 제게 있어서는 봄과 봄 사이 낭떠러지가 생겨 추락한 나날이었습니다. 봄을 잡지 못하고 추락한 그 습한 어둠을 견디는 건 그래도 그 어두운 곳을 스며든 봄이라는 색깔이 있었기 때문에 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코로나19가 우리를 덮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더구나 제가 사는 곳은 확진자가 가장 많이 나온 대구니까요. 거의 한 달 반을 두문불출, 스스로 자신을 격리하고 살았습니다. 의사협회 회장님의 절규라고나 할까요, 전국의 의료진들 모두 달려와 달라고 했을 때 저는 신문을 보면서 울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가 얼마나 무서운지, 그렇다고 집에 있으면서 시를 쓰든가 산문을 쓰든가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불편한 마음을 안고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던 나날이었습니다. 지금은 확진자가 한 자리 숫자로 떨어져서 야외로 가끔은 숨을 쉬러 나갑니다.
◼김희준: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한 몸이지만 정신을 몇 명으로 나누어 살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저는 학교 도서관에 처박혀 있고요, 글을 쓰는 저는 원고 마감일을 지키려고 창이 큰 카페에서 사람 구경도 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저는 코로나19로 오프라인 수업을 잠시 중단하고 카카오톡 라이브로 온라인 수업을 합니다. 채팅창을 통해 아이들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엔 마치 유튜브 bj가 된 것 같아서 한 번씩 멍해질 때도 있어요.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달라고 하거나 ‘별풍선’을 쏴달라고 장난을 치면 아이들이 까르르 뒤집어져요. 그리고 모든 지역에서 그렇겠지만 상반기 특강이나 행사, 문학제가 하반기로 미뤄졌잖아요. 일들이 하반기에 바짝 몰려있어서 조금 긴장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그 외의 평범한 희준이는 통영에 가서 착한 딸이 되기도 하고, 작년에 산 돗자리를 아무 데나 펼쳐두고 함부로 낮잠을 자고. 참, 최근엔 가벼운 접촉사고를 당해서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다녔어요. 선생님 전화를 받은 것도 병원에서 막 나오던 때였고요.(웃음)
▣ 이 령: 선생님들의 근황을 들으면서 시인들의 삶의 모습을 짐작하게 됩니다. 시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어떤 진중함과 더불어 생활인으로서 소탈함까지 말입니다. 특히 오늘 대담은 다양한 세대를 대표하는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토론의 장인만큼 기대가 더 큽니다.
원론적입니다만, 선생님들께서 생각하는 시란 무엇일까요? 다시 말해서 시를 쓰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정숙자: 저의 경우 시에 대해서 논하라면 3단계가 될 듯합니다. 첫째는 거북이가 알에서 깨자마자 바다를 향해 기어가듯이 글을 깨치자마자 ‘시’를 향했던 것이고요, 두 번째는 정신을 차려 보니 제가 헤엄치고 있는 곳이 ‘시’의 바다였던 것이고요, 세 번째는 이제 남은 목숨을 바쳐야 할 장소 역시 ‘시’의 해저일 수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시를 선택했다기보다 시가 저를 택한 셈이고, 그것은 운명이 아닌 숙명에 해당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시에 관한 삶이라면 따로 이유가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번 생에서 시는 저에게 내린 신의 커다란 축복이며, 거기 값하기 위해서는 다만 공손히-열심히 읽고 쓰는 데 주력할 따름입니다. 마치 거북이가 바다를 사랑하고 의지하며 사는 것처럼요. 시는 저의 또 하나의 지구라고나 할까요?
▣ 이 령: 하하! 역시 선생님다우십니다. “시는 신의 커다란 축복이며, 거기 값하기 위해서는 다만 공손히-열심히 읽고 쓰는 데 주력할 따름이다.”라는 말씀이 심해의 어둠을 가르는 파리한 등불 같다고 할까요! 운명에 수긍하는 겸손한 시인의 면모가 느껴집니다.
◼정하해: 언어라는 생물을 데리고 시에 이르는 길은 때로는 가혹하고, 때로는 가장 날카로운 창조성이라고 봅니다. 시는 또 다른 나를 전범으로 내 세워 그것으로 하여 내 피의 아픔과 정신의 외로움과 심장의 펄떡거림을 지불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적인 대상에 있어 여러 가지 갈등하는 무늬들이 깨어지면서 터져나가는 것이 시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예술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시 또한 정직한 것 빼고 솔직히 부정하는 것이 어떤 사물이든 결탁해서 얻은 것이 더 매력적일 때가 있거든요, 시를 쓰는 이유라면, 모든 시인들이 다 그렇듯 각자의 금형에 채워 넣는 언어의 빛과 결을 밤낮없이 다듬고 갈고 하여 그 특수한 물상을 만들어 내는 일에 전부를 바치죠, 저 역시 나의 神이 이왕이면 한번 저지르고 오라는 생애를 주었기에 삼백 육십 개의 아픈 마디들을 세상에 접목시켜 인간의 순차성으로 하여 얼마나 많은 오류가 나를 범하는지, 나의 질서와 됨됨이를 알아내기 위한 스스로 내린 형벌이 시 쓰를 쓰게 된 이유라고 할까요,
▣ 이 령: 네, 같은 의미로 시인이라면 대개 시가 세계에 대한 미메시스(mimesis), 즉 모방인가? 혹은 세계의 부정성을 닮아감으로써 오히려 세계의 변화에 호소할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답습인가? 타인의 고통과 연대하는 것인가? 등의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시작을 통한 그간의 숙고를 짐작하겠습니다.
◼김희준: 저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있어 시란 뭘까’를 고민하는 시간보다 ‘시가 세상에 왜 있는 걸까’를 더 오래 고민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시는 태어나자마자 쥔 손금 같아서, 시를 쓰는 일이 당연했어요. 시인이 되어야지! 라는 생각이라든가 장래 희망란에 시인을 적어본 일은 없지만 그냥 늘 글을 쓰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시는 뭘까, 시인은 왜 있을까, 시가 세상에 왜 있지’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언젠가 또 바뀌겠지만 현재 나름의 답을 내려 보자면,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을 추상적으로 혹은 구체적으로 표현해내기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저는 눈물이 많아서 정말 어이없는 이유로도 잘 훌쩍거려요. 그런데 이따금 저도 왜 이렇게 우는지 모를 때가 많아서 이유를 찾으려고 해요. 슬픔이나 외로움, 섭섭함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너무 광범위한 감정이라서요. 그보다 더 세밀하고 다양한 울음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 이해받기 어려운 감정의 영역을 모두에게 설득해주기 위해서 시가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시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내가 나를 잘 알아주고 싶어서. 또 당신을 잘 보고 싶으니까요.(웃음)
▣ 이 령: 네~ “내가 나를 잘 알아주고 싶어서. 또 당신을 잘 보고 싶으니까요.”라는 시작의 이유 답변은 역시 신세대 시인이신 만큼 오이 향 나는 상큼하고 기분 좋은 말씀입니다. 하하하!
오늘 모신 선생님들은 현 시단에서 매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가끔 경험이전의 선험이 과연 시로 승화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가지게 됩니다. 선생님들이 마주했던 생애 최초의 시적인 순간, 특별한 경험은 어땠을까요?
◼정하해: 생애 최초의 시적인 순간이라면? 저 같은 경우는 어머니를 빼고는 시를 논할 수가 없는데요, 사실 제 어머니는 11남매를 낳으셨는데 어릴 때 병으로 다 잃어버리고 사남매만 겨우 붙들어 키우셨는데, 제 위로 터울이 많은 언니는 서울로 시집을 가서 살았어요, 제가 초등학교 일학년부터 그 언니에게 어머니가 불러주는 대로 편지를 썼어요, 그때부터 문장력이 생겨 백일장이다 뭐다 다니다 그 언니네로 가서 공부를 했는데 어머니께서 뱀에 물리셔서 갑자기 아프신 바람에 제가 서울에서 공부하다 내려와서 어머니 병간호를 했죠. 어떤 약도 듣지를 않아 그해 겨울 돌아가셨어요, 저의 스무 살 겨울은 참 냉정했던 거죠, 장례식을 치르고 난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밖을 내다보는데 거짓말 같이 눈이 하얗게 와있었어요. 서럽도록 흰 눈이 신발 안까지 들어와 누웠는데 한 사람이 가고 난 후의 찰나인 그 광경이 너무도 아름다우면서, 하염없이 터져 나오는 슬픈 빛이 제게는 최초의 시였던 것 같습니다.
◼정숙자: 언젠가도 한번 ‘생애 최초의 시적인 순간’을 피력한 적이 있는데요, 그 경험은 너무나도 선명해서 반복할 수밖에 없군요. 생애 최초의 순간은 한 단 한 번뿐이니까요. 열 살 때, 어느 여름날, 대문 밖 동산에 올라 막 떠오른 초저녁별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곧 잠자리에 들 텐데 별들은 이제 부스스 일어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바로 최초의 의인화였던 것 같아요. ‘부스스’라는 부사를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데, 어찌나 황홀하고 신기한지 온통 머릿속이 빛으로 가득 찬 것만 같았죠. 빅뱅의 순간에 힉스입자가 모든 기본입자들에게 질량을 부여했다고 들었는데, 아마도 저는 그 별을 바라본 순간 모든 시적 질량을 부여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질량은 변함이 없다고 느껴집니다.
◼김희준: 음…. 생애 최초의 시적인 순간이라면 아마 태어날 때가 아닐까요. 그렇지만 아쉽게도 그날은 기억나지 않아요.(웃음) 최초의 시적인 순간과 어울리는 까마득하고 근사한 기억이 있긴 한데 말을 꺼내면 왜곡되거나 사라질 것 같아요. 그래서 아끼고 싶어요. 그보다 요즘 제가 재미있어하는 시적인 순간이 있어요. 하루는 집 앞에 보리밥집이 생겨서 간 적이 있어요. 요리를 하는 분이 외관상으로는 최소 40년 경력은 되어 보였는데 너무 맛이 없는 거예요. 파전을 시켰는데 밀가루 범벅이었어요. 부침개는 웬만해서 맛없기가 힘들잖아요. 근데 밀가루 냄새만 나고 진짜 맛없었어요. 먹는 내내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어요. 보리밥집이 된장찌개 하나 제대로 맛을 내지 못하는 것도 너무 아이러니했고요. 그리고 며칠 전에 엄마 손을 잡고 점집을 다녀왔는데 신기가 없는지 점쟁이가 하나도 맞추질 못하더라고요. 엽전을 던지며 화는 왜 그렇게 내고 휘파람은 왜 그렇게 불어대는지, 뱀 나오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불상을 닮은 미상의 인물이 그려진 이상한 벽지만 보다 나왔어요. 점집 대문을 나오자마자 엄마가 배를 잡고 앉는 거예요. 점쟁이 앞에서 웃음을 참느라 배꼽이 긴장을 했대요.(웃음) 돌아오는 길에 점쟁이 말투를 흉내 내며 엄마랑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그런 일들이 시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보리밥집 간판은 근사한데 내용이 부실한 음식 같은 것. 호기심이 발동해서 생애 최초로 가본 점집에 신이 사라진 일 같은 것 말예요. 분위기 파악 못하고 화단에서 혼자 먼저 핀 칸나와 눈 마주칠 때, 저 꽃이 얼마나 뻘쭘할지 가늠해보는 일. 분식집에서 기름 온도를 못 맞춘 튀김을 먹을 때. 신을 잃은 점집의 간절함. 이런 사소하고 극적인 순간이 황당하면서도 즐겁고 그러면서 소중하고 귀엽다는 생각을 해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일상이 입체적이잖아요. 이런 시간이 모여서 시가 되는 건 아닐까요.
▣ 이 령: 와우! 세분 선생님들께서는 예외 없이 시인의 운명을 타고 나셨나봅니다. 마치 파릉화상의 취모검 같은 예리하지만 속 깊은 말씀들, 너무나 선명한 기억들의 소환과 그 속에 내재된 시적역량들이 짐작됩니다. 한 순간, 한 사람, 한 생이 매듭처럼 단단하게 내장되어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ㅎㅎㅎ
오늘 대담은 60대에서 20대까지 각 세대를 대표하는 시인들께서 참여 하고 계십니다. 시작과 습작, 등단 시 문단의 환경과 분위기, 시의 흐름이나 변화지점 그리고 선생님들이 느낀 문단 분위기의 변화 등을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숙자: 제가 등단했던 80년대만 해도 해사구조보다는 통사구조의 시가 많이 발표되었습니다만, 2000년 이후에는 소위 미래파의 난해시들이 뉴웨이브의 범람을 일으켰지요. 비커에 넣고 열을 가해봐야 성분을 알 수 있을 정도의 무리수도 많았습니다. 잡지를 열면 그 전경화(前景化)에 대한 혹평과 호평이 첨예한 각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주 안팎의 만물은 살아 움직이므로 천변만화하게 마련이죠. 지금은 또 새로운 세대의 언술이 나타나 생명력을 내뿜고 있습니다. 유속이 얼마나 빠른지 눈이 아니라 피부만으로도 알아챌 정도입니다. 여기서 시인 개개인이 주의해야 할 점은 각자 자신이 ‘한단지보(邯鄲之步)’의 소년이 되지 않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위도를 정확히 알고 가꾸다가 죽는 것, 그것이면 족하지 않을까요?
◼정하해: 신이 인간을 만든 것과 같이 정밀한 방법으로, 인간의 심미적인 중에서 가장 여린 곳을 건드려 시대적인 노래를 하라면 그것은 바로 시로 화답을 할 것입니다. 사물의 고정관념에서 고민하고 풀어내는 그 아득한 시간을 견뎌 완성해내는 한 편의 시가 주는 구원 감, 나의 모든 핍진을 보상받는 게 시작이라면, 습작은 참 오래도록 시적인 대상에 나를 몰아넣고 뭉근히 삶는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시는 그 현장을 열 번도 더 가서야 끄집어내는, 나를 죽이고 받아내는 지독한 거래도 어쩌다 가끔은 생기고는 합니다.
제가 등단했을 그 당시는 선후배 간의 예의가 철저했습니다. 선배선생님들께서는 풋내기라고 문단의 많은 이야기와 좋은 작품을 쓰는 시인들과 그분들이 쓴 시를 가지고 시의 낱낱을 말씀해 주셔서 시인으로써의 어떤 방향이 시작의 올바른 길인가를 제시해 주시는 분들이 많으셨습니다. 주로 서정시에 대한 말씀이 깊으셨고, 그러다 미래시라는 장르가 나타나면서 획기적인 표현이라든가 아주 신선한 발상으로써 서정성과의 상승작용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문단 기류의 이변을 걱정 반 찬성 반이었던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시인이라고 해서 다 같이 서정성만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각자 느낌을 받는 대로 한 편의 시 속에서 서정과 난해가 같이 존재한다면 그 또한 시대적인 변화를 먼저 느낀 시인의 감정이기 때문에 시에 대한 결례는 아니라고 봤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난해한 시 쓰기를 좋아해서 그런지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거든요.
지금의 문단 분위기에 대해서는 요즘은 여러 행사에 많이 참여를 하지 않아서 피부로 느끼는 게 예전만 못하지만, 요즘은 개인주의로 많이 변했다고 여겨집니다. 함부로 부르는 호칭부터 위아래가 없는, 어쩔 수 없어서 끄덕이는 그런, 시인의 인간적인 면은 없고 오로지 시라는 명부에 적을 걸어두고 있다는 모습도 더러 봅니다. 단 것만 찾아다니는 철새족부터 서로 밀어주기 위한 문학판의 질서가 더러는 씁쓸함을 느낄 때가 있어요,
◼김희준: 저는 어려서부터 백일장을 많이 다녔어요. 백일장에서는 주제를 확연하게 드러내는 것을 요구하잖아요. 습작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제가 쓴 단어에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었지요. 그것이 글쓰기의 기본이라 생각했거든요. 근데 스무 살부터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시제에 맞게 글을 쓰고 오면 왠지 제 영혼을 판 느낌이 들었어요. 그럼에도 써야할 합당한 이유를 찾으며 가끔 영혼을 파는 글을 썼어요.
그러다가 어느 문예지를 봤어요. 자유롭게 글을 쓰는 시인이 참으로 많았어요. 부러웠죠. 저도 모르게 “시인은 좋겠다. 맘대로 글을 쓸 수 있어서.” 그 말을 뱉었죠. 그러고 나니 이때쯤이면 등단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막상 문단이 나오니 그도 만만치 않았어요. 이제 눈치가 보이는 거예요. 어린 것이 아는 척하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는 걸 막연하게 알게 되었어요. 시인은 맘대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상징 너머의 상징을 찾아가는 길이었다는 걸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글은 쓸수록 힘들어요. 그러나 그만큼 마음이 부자가 되기도 해요. 한없이 가난해지는 날이 더 많지만요.(웃음)
음…, 저는 아직 문단의 흐름이나 역사 같은 커다란 지점을 파악하기에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질문을 받는다는 자체도 부끄럽고요.(웃음) 그래서 이 부분은 존경하는 정숙자 선생님과 정하해 선생님께 조금 기대고 싶습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문화와 언어가 바뀌는 지점이 곧 문단의 변화지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세대마다 공유하는 문화가 있고, 그에 따른 언어의식과 언어적 감수성 또한 달라지잖아요.
등단의 경우도 예전에는 신춘문예와 문예지의 추천을 통해 이루어지던 일이었지만, 인터넷이 활발한 요즘은 등용문이 비교적 넓어졌어요. 등단 매체도 다양해지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독자였던 개인이 작가가 되는 재밌고 특별한 일이 생기죠. 독립 출판으로 어느 날 짜잔, 하고 작가가 되기도 하고요. 많은 문예지에서 <독자 투고란>이 활발하게 운영되는 것만 봐도 지금의 문학은 시인과 독자가 경계를 허물어 가는 과정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대중에게 다가가기 편한 문장이 문단의 흐름을 타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새로운 흐름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몇 가지 문제를 생각해보는 일 또한 중요해요. 작년 늦여름에 한 선생님과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요지는 젊은 시인들이 쉬운 문장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분과의 대화에서 저는 크게 공감을 했어요.
▣ 이 령: 역시 오늘 다양한 세대의 선생님들을 모신 대담이라서 인가요? 문단의 과거와 현재의 변화상황을 더 잘 알겠습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던가요? 오늘 60대부터 20대까지 시인들의 이런 대화의 장도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음~ 다음 질문 드립니다.
일률적으로 정리하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으나 예술은 미를, 도덕은 선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습니다. 결국 사회는 개인들의 집합이며 개인들의 통념이 예술에 반영되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도덕과 예술의 상관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하해: 예전에 무세중이라는 행위예술가의 작품을 본 적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행위예술의 대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분의 행위예술은 누드입니다. 누드로 말하는 퍼포먼스이지요, 그냥 일반적인 대중들이 봤을 때는 발가벗은 미친 남자로 보였겠지만, 예술이라는 무대에서 자신을 몸부림치며 이 세상에 고하는 그 장면을 예술로 봤을 때는 신을 대신해 자신의 몸을 도구로 환생하는 것이라고 보였습니다. 외설로 봤을 때는 도덕적이라는 비난이 따라 붙겠죠, 이렇듯 예술과 도덕은 동전의 양면 차이라고 생각됩니다. 사회적인 질서를 생각하면 도덕이 먼저겠지요, 그러나 개인의 내면을 정면에 내세워 추는 원초적인 춤은 예술이 아니고 달리 가져다 붙일 말이 없더라구요, 우리는 물론 도덕적인 질서도 좋고 하지만, 외설이 예술이었을 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개인적인 질서도 있지 않을까요,
◼정숙자: 예술작품이 꼭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못 박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예술인의 삶이라면 도덕이나 윤리적으로 모순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2010년대를 건너오면서 예술계 전체에 불어닥친 ‘미투’ 사건과 ‘표절’ 논란 등은 참 마음 아픈 일이었습니다. 흔히 윤리는 개인의 범주, 도덕은 사회적 범주로 확장됩니다. 예술작품이란 다양한 인간의 삶을 표현하는 세계이므로 미학적 구획은 불가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단일한 색깔만으로는 의미나 명암을 어렴풋이나마 그려낼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김희준: 도덕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서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더 기울어지는 무게가 있을 거예요. 그리고 수많은 예술가의 가치관이 다른 것처럼 세상엔 도덕과 예술이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 거고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예술의 범위에서도 끝까지 저버릴 수 없는 인간 윤리의 마지노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유롭되 인간의 선을 지킬 수 있는 경계가 분명히 있는데 한 번씩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작품이 보이더라고요.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요. 그리고 저 또한 타인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어휘는 없는가를 고민하고 검열하는 과정이 있어요. 조금 단순하지만 저는 이 문제를 생각할 때 한 가지 가정법을 시도해요.
세상 모든 것이 타인의 것이라고 가정 해보는 거예요. 모든 생물을 말하는 하나의 개체로 생각한다면, 그래서 언젠가 돌려주어야 하는 대여품이라고 가정하는 거죠. 나의 삶은 찰나일 뿐이며 세상은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면 먼지 한 톨 혐오할 수 없더라고요. 저는 윤리와 예의를 지키는 일은 지능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개인의 도덕뿐만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예술은 지능이 떨어지는 인간의 오만함이라고 여겨요.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거나 스스로가 뛰어난 천재라고 믿는 편협함을 지닌 인간만이 도덕과 예술의 경계를 혼동한다고 생각했어요.
인간의 욕망이 본능적인 것은 맞지만, 퇴행기를 맞은 모습이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떤 분야든 새로운 사조나 문제작을 제기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접근 방법에 있어 도덕성을 배제한 채 개인 예술의 자유만을 중시한다면 예술가는 사회에 필요 없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요.
▣ 이 령: 좀 구체적으로 토의를 해 보겠습니다.
요즘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여전히 제기되고 있는 ‘미투 사건’ 등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김희준: 우선 너무 안타까워요. 그냥 범죄로만 사건을 접해도 충분히 괴로운데 성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하게 성별을 구분 짓고 있어서 안타까워요. 일상을 이야기하듯 편안하게 페미니즘을 꺼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안타깝고요.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를 행하는 성별도 선명해서 슬퍼져요. ‘미투’와 ‘N번방 사건’에서도 능동적으로 분노하는 성별이 한쪽이라 맥이 빠질 때가 많아요. 심지어 성범죄를 저지르는 나이가 점점 어려진다는 사실 또한 충격이고요.
뉴스에서 본 26만명이라는 ‘N번방 사건’의 공범자 숫자를 보고 어안이 벙벙했어요. 26만이라는 숫자는 전국의 택시 숫자와 같다고 하더군요. 늘 곁에 있고, 언제나 눈에 띄는 택시의 숫자만큼 주변에 범죄자가 많다는 사실이 무서웠어요. 사건을 접하자마자 가족 중에 범죄자가 있으면 어떡하지, 걱정부터 했어요. 서울에 있는 오빠에게 전화를 해서 “오빠야 함부래 이상한 거, 어, 범죄 뭐, 그런 거, 저지르고 다니면 안 된다.” 당부하는 제게 “바빠 죽겠다.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끊어라. 나쁜 놈들 싹 다 잡아서 감옥에 처넣어야 한다.”는 대답을 듣고 안심했어요.(웃음)
그리고 뉴스에서 조주빈에 대한 기사를 다루는 것은 좋지만, 범죄자에게 서사를 만들어주는 일을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희대의 악마’ 같은 수식어 대신 ‘희대의 찌질이, 사회부적응자, 최하위급 찐따 일베남’ 같은 타이틀을 걸어야 한다고 여겼고요. 기사의 댓글에서는 현 시국을 반영해 ‘마스크 5부제처럼 공범자들의 자살 5부제를 실행해야 한다.’, ‘한강에 가서 출생연도에 맞춰 알아서 몸을 던져라.’ 같은 풍자를 통한 분노를 표출하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범죄자에 대한 가벼운 형량을 지적하는 뜻이기도 해요.
성범죄가 일어나는 이유는 남성의 욕망 때문이 아닙니다. 욕망은 여성에게도 제한적이지 않기 때문이죠. 성범죄가 발생하는 지점으로 가 보면 여성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인간이 아닌 나의 성욕을 풀어줄 도구로 여긴다는 거예요. 페미니즘 운동의 근본적인 목적 또한 ‘인간성의 회복, 성별의 동등함’에 있습니다. 페미니즘의 한계나 여성운동이 남혐으로 치닫는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어요. 이제 그만하라는 거죠. 그러나 그들은 세계의 모든 약자로부터 시작된 운동의 흐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식민지해방, 독립운동, 각종 인권운동 등 피해자가 오랜 기간 받아온 억압이 분출될 때의 과격함과 파격적인 시위를 떠올려보셨으면 해요. 인권신장을 조롱하던 반대편의 입장을 헤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직 그만할 때가 아니라는 거죠. 성범죄가 사라지기 위해서는 여성을 동일한 인간으로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요구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 사회가 어느 때보다 여성의 말에 집중하고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의 반이 끊임없이 분노하고 식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분노하는 반은 남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숙자: 시급히 척결되어야 할 사회적 문제임에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N번방 사건’ 역시 ‘미투 사건’과 마찬가지로 성 관련 어둠이지요. 피해자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빨리 아물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그 제도적 장치가 조속히 마련되기를 바라고 바랄 뿐입니다.
◼정하해: 참으로 민감한 질문입니다. 이 시대는 너무도 가파르게 변화무상하게 사건사고가 생겨나는데요, 그 중에서도 여성의 성이 가장 사회적으로 크나큰 범주에 든다고 생각합니다. 왜 인간의 일탈에서 굳이 여성의 성은 노리개라는 생각이 고정된 이유는 무얼까요, 그것은 시대적인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많은 미디어들로 하여 잘못 왜곡된 성을 접하게 된 어린 아이들의 빠른 감정을 어른들은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서 비극은 시작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몰상식한 인간에게서 성을 지키는 규범을 적어도 나라를 이고 갈 아이들에게는 누차 교육해야합니다. 인생이 뭔지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불행을 먼저 배워버린 그런 과오를 어른들은 죄인처럼 속죄하는 심정으로 수많은 미디어들의 불건전한 프로그램을 막아주어야 할 때라고 봅니다.
몇 해 전부터 미투 사건이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우리 문단도 예외는 아니었죠, 여자라는 단어가 참 뼈가 아픈 단어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자를 취하고 싶으면 사창가를 가면 되고 노래를 하고 싶으면 노래방을 가라는 말이 있듯이, 동등한 위치의 집단에서 함부로 취해도 될 사람은 없습니다. 둘 사이의 전류가 흘렀다면 문제는 다르겠지요, 그러나 어느 자리이든 함께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할 권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설령 그럴 여지를 받았다고 해서 전부를 맡기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죠, 가끔은 그런 사석의 자리에서 이해 못할 짓을 하는 문단 망나니가 끼는 일도 더러는 있습니다. 저는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말짱한 정신으로 그런 걸 다 보게 되는데요, 하지만 싫고 나쁨을 인지 못할 정도의 바보는 아닌 이상 자신이 저질러 놓은 싸구려 감정은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겠지요,
▣ 이 령: 사회가 발달하면서 현대인들에게 ‘심리적 거리두기’는 이미 보편화 되었고 지금은 코로나 시국을 맞아 ‘사회적 거리두기’마저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사실 로버트 파커가 말한 ‘사회적 거리’라는 것이 지금 언급되고 있는 물리적 거리보다는 심리적 거리와 더 가까운 용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의 자아는 각자 심리적인 경계선을 가지고 있으며 타인이 이러한 경계선 안쪽으로 과도하게 가까워지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외부의 간섭 없이 자신만의 심리적 공간이 유지될 때 독립적 자아가 유지되며 그 안에서 비로소 편안함을 유지하는 것일 텐데요.
결론적으로 예술인들이 추구하는 ‘자발적 고립’이 작금의 ‘사회적, 심리적 거리두기’로 현실화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점에 대해서 선생님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정하해: 이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사람과의 간격을 2미터로 하자는 자발적인 거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우선 몸과의 거리 보다는 심리적인 거리가 더 무섭게 다가왔으니까요
물론 바이러스라는 병을 이유로 그렇게 해야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는 시대에 직면한 지금이 고립이라는 말과 함께 생은 드디어 혼자라는 불행 앞에 도달했구나 싶어요,
저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 하는 타입입니다. 몇 달이고 그냥 혼자 두어도 잘 노는 그런 타입이죠, 타인과의 그 적절한 거리 두기를 늘 한번쯤 고민하게 되는 소심함이랄까요, 결론적으로 낯가림을 타는 편이죠 먼저 선뜻 다가서는 일은 그렇게 어렵더라구요, 어느 날 친절하게 경계선을 넘어오는 사람은 딱 거기까지면 좋은 거리인데 서로 상처 날 일도 없고 그 사람에게 실수할 일도 없고 말입니다. 어째보면 좀 냉정한 마음일지 모르지만요, 오래도록 곁에서 좋은 덕담을 주고받을 사이라면 생채기 안 나는 그런 거리가 저는 좋다고 봅니다. 더러는 무척 가까이 있다고 여겨지지만 심리적인 거리가 생기는 그런 관계도 있게 마련이니까요. 내 안에서의 편안함, 내 안에서의 자유, 하지만 사람인 이상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거리도 있습니다. 시대적인 거리두기는 개개인의 판단에 있다고 봅니다.
◼김희준: 사실 세계에 바이러스가 번지고 많은 작가를 보면서 느낀 것이 있어요. ‘사람을 만나지 않을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 ‘드디어 집에만 있을 합당한 이유를 찾았다’ 코로나를 유일하게 견디는 직업군이 있다면 작가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시 돌아와서, 질문해주신 심리적 거리는 창작자에겐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저는 사람을 정말 좋아하지만 못지않게 혼자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지요. 그래서 저는 심리적 거리두기를 적당하게 하고 있는 편에 속해요. 인간 심리는 복잡해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양면을 가지고 있어요. ‘불편한 골짜기’(사람과 너무 닮은 로봇을 보면 불편해지는 감정)처럼 창작자들은 관객과의 관계망을 구축하고 싶어 하지만, 개인의 삶이 많은 곳에 노출되면 금방 피로를 느끼는 것이 또한 사람이라 생각해요. 창작자들은 감각에 민감한 만큼 스트레스를 받기도 쉽잖아요. 어쩌다 보니 코로나로 인해 세계인이 자발적 고립을 행하고 있지만, 덕분에 다수의 사람이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표면적으로도 지구의 환경이나 대기도 많이 좋아지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이런 바이러스 같은 문제로 인간의 생사여탈이 걸린 일은 별개가 아닐까요. 경제가 무너지고 있는 것도 그렇고요. 지금의 상황을 ‘자발적 고립’이라고 보진 않아요. 진정한 사회적 거리두기, 혹은 자발적 고립은 현대인들의 성숙한 자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돼요.
◼정숙자: 아, 이제 심리학으로 진입해야겠군요.(ㅎㅎ) 예로부터 꿈이 현실이 되어온 예는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열려가 참깨”가 리모컨이 되었다든지, “저기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찍어다가”의 공상이 달 착륙에 성공한 것이라든지! ‘사회적 거리두기’는 일단 공간의 확보인데요, 거기 더하여 ‘심리적 거리두기’는 시간의 확보까지를 뜻한다고 봅니다. 작가의 세계에서 항용 수용되었던 ‘자발적 고립’이 이제는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돼버렸습니다.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의 저서 『미움받을 용기』 81쪽에는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라고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70-1937)의 단언을 빌려 쓴 대목이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고민이든 거기에는 반드시 타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83쪽). 회의의 대가인 데카르트도 어디선가 말했습니다. “고민 없이 살려면 모든 인간관계에서 멀어지면 된다.”고요. 하지만 그건 개인적 결정과 권한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이후에는 사회의 분위기가 상당 부분 바뀌리라고 예측합니다. 그렇게 되면 심리적 거리도 자연스럽게 조정이 되겠지요.
▣ 이 령: ‘문학상 선정, 문학작품의 조명에 있어 평단의 행태가 편협적이다.’ ‘우리나라 문학판이 끼리끼리 문화여서 시인은 늘고 문학성은 사라지고 있다’ 는 자조 섞인 우려의 목소리가 많습니다.
이 점에 대한 선생님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정숙자: ‘문학상 선정’에 대해서 저로서는 아는 바가 적습니다. 어느 단체의 중심에 들어가 본 적도 없거니와, 어쩌다 제가 심사를 맡게 되더라도 작품성 외에 구애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직접 경험한 바는 없고 대개의 경우 ‘수군수군담’으로 들어오기는 했지요. 그런데 최근 제가 두 개의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데 얼마나 순수하게 주어졌는지, 상을 탔다는 기쁨보다도 암암리에 그러리라고 여겼던 사회적 불신감이 소거된 점이, 더 큰 기쁨이라고 동료와 몇몇 선후배 님께 소감을 답해드리곤 했습니다. 등단 이후 30년 동안이나 별다른 존재감 없이 걸어온 보람이랄까. 모든 문학상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문학성의 잣대도 역시 작품에 있으리라는 믿음을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정하해: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누구나 꿈을 꾸게 되는 상이 문학상이죠, 하지만 그것은 하늘의 별따기 보다 더 어렵습니다. 소위 말하는 그 부류 안의 일부분이든가 아니면 누구의 파이던가, 문학상은 받은 사람이 또 타고 합디다. 평론가들은 그 사람들 밖에는, 아니 그 사람들의 작품 밖에는 아는 게 없으니까요.
좋은 작품만 가지고는 상을 탈 수 없다는 문단의 이상한 전통이 형성이 되어 있더라구요, 그야말로 홀로 자신의 길만 묵묵히 걸어온 문학인들이 어쩌다 문학상을 받는 건 정말이지 천운인 셈이죠, 그리고 밀어주기, 뻔히 들어나는 일인데도 당연한 듯 저질러지는 상은 문단의 이단을 만들고 피폐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저 역시 2018년도에 네 번째 시집을 내고 시인협회 상을 받았을 때 동료들은 그러데요 천운이었다고, 누구의 파도 누구의 밑에도 들어가지 않은 홀로 하는 문학이 문단 패거리가 설쳐댈 때는 얼마나 외로운지 당해본 사람은 아니까요. 줄 세워서 문학상을 남발해 주는 일은 우리 문단사에서 해결해야 할 영원한 숙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바이러스 같은 문제로 인간의 생사여탈이 걸린 일은 별개가 아닐까요. 경제가 무너지고 있는 것도 그렇고요. 지금의 상황을 ‘자발적 고립’이라고 보진 않아요. 진정한 사회적 거리두기, 혹은 자발적 고립은 현대인들의 성숙한 자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돼요.
◼김희준: 문학상을 제정한 주최자의 목적과 취지에 가장 적합한 작품을 선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학상은 개개의 이름이 있을 거잖아요. 우리나라는 문학상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물론 후배를 양성하는데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불협화음이 많으니 그만큼 문제가 많다는 것이겠지요. 문학상이란 게 결국 그 작가의 문학적 정신을 기리고 후배 문인에게 문학적 성취를 고취시키기 위한 목적이 우선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문학상은 나누어 먹기나 끼리끼리, 그리고 문단에서의 명성만을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작품 활동은 혼자 하는 거라고 선생님들은 말씀을 하지요. 그러면서 제자 챙기고 친구 챙기고 같은 학교 챙기고. 좀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문학상과 아무 관련이 없으니 이렇게 대놓고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웃음) 설령 관련이 있더라도 이런 병폐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작가들이 타성에 젖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작품보다 파급력을 가지는 작가의 이름으로 상을 결정하는 일도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품은 온전한 작품으로 평가받아야 마땅하고 그것이 앞선 질문에 있던 예술은 미를, 도덕은 선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는다에 합당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라는 말에 저는 공감합니다. 고인 것은 어떤 것이든 썩는 것입니다. 집단도 마찬가지지요. 하나의 세력이 형성되면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적 구조이니까요. 그것을 원활하고 공정한 흐름으로 진행되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문인의 건강한 정신이 모여 문학상의 병폐를 줄여나갔으면 좋겠어요.
▣ 이 령: 주제를 좀 바꿔보겠습니다. 오늘 대담에 참여하신 선생님들께서는 현 문단의 대표적 여성 시인들이십니다. 한국문학의 모성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한국시의 모성성은 강요된 것이거나 획일적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숙자: 한국시뿐 아니라 모성성은 모성의 원형 심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건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본질일 것입니다. 우리의 고전시가 가운데 <정읍사>와 <공무도하가>만 보더라도 그 절절한 심정이 강요되었으리라고는 느껴지지 않고요, 한없는 애정과 측은지심이야말로 여성을 더욱 여성적이게 하는 면모가 아닐는지요? 또한 근대의 여성시는 수효가 많지도 않았거니와, 현대에 와서는 여성/남성 구분을 못할 정도로 사유의 폭과 개성이 돌올하고 예각적입니다. 이후로는 더욱 당찬 시인들이 배출되리라 봅니다.
◼정하해: 그렇죠? 은근히 원하는 모성애 같은 거요. 시에서 나타나는 모성은 다양합니다. 가부장적인 것과, 아니면 홀어머니라는 정의, 또한 가족의 부재로 인하여 나타나는 어머니의 역할, 많은 시에서 그것을 차입해 씁니다. 좀 더 아프고 좀 더 억울하고 좀 더 가난한 시대를 표현한 작품이야말로 사람 냄새가 난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되니까요, 하지만 왜 굳이 모성이라는 심연의 밑바닥을 들어내야 섧고 힘들고 할까요, 그것은 작품의 우울로 하여 받아들이는 독자들을 건드려야 좋은 작품인 것처럼 우리는 시적인 물상 안에서 늘 어머니를 건드려야 하는 외람을 저지릅니다. 다 같은 입장의 가족관계를 지닌 우리나라의 특성상 가장 슬픈 감정을 많이 차지하는 부분이 어머니라는 단어이기 때문에 강요이든 자의든 모성을 쓰는 게 어쩌면 쉬우면서도 성공하는 작품이 될 가능성이 크니까 많이들 쓰지 않나 싶어요, 저 역시 모성에 많이 기댄 시인 중에 한 사람이니까요. 그런 시들은 어떤 전염병처럼 원하기도 하고 자발적으로 앓는, 그런 친숙함에서 오는 절망감을 흔들어 가라앉히고 낯익은 세계의 성찰이라는 말로 포장을 하죠, 삶의 본질을 논하기 이전에 우리는 어머니라는 단어에서 빚을 졌다고 생각합니다. 죽을 때까지 갚아지지 않는 어떤 생멸에 관한 잣대를 가지고 재는 것이 어쩌면 획일적일 수도 있겠다 싶네요,
◼김희준: 예전 한국문학에 주로 등장하는 여성의 역할은 중심이 아닌 주변에 있었어요. 남성 주인공을 뒷바라지 하는 누나와 여동생, 그리고 어머니. 남성 주인공을 고난에 빠뜨리거나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신여성 애인, 혹은 몸을 파는 창녀 애인. 어떤 역할을 맡든 여성 인물은 극을 이끌어가는 주체가 아니라 남성의 도구로써 사용되었던 것이죠. 망치를 사용할 때, 의자에 앉을 때 우리는 망치와 의자에게 널 사용해도 될까? 하며 예의를 차리지 않습니다. 요즘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산책하는 반려동물에게 너를 좀 만져도 되겠니? 라고 묻지 않습니다. 그저 귀여워하면서 만져요. 간혹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긴 하지만 정작 만져질 동물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죠. 왜냐하면 망치와 의자와 동물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니까요. 마찬가지로 한국문학을 주로 이끌어가던 기성의 남성 문인들은 여성의 입장을 궁금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남성이 필요하고 생각하고 바라보는 이미지로서만 여성의 성별을 소비한 것이죠. 그렇기에 문단에서 흔한 소재로 쓰이는, 희생과 숭고함으로 버무려진 성녀(모성성) 이미지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오늘까지 이어져 온 것이고요.
그러나 언제나 이런 것들을 탈피하고 변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어요. 앞서 ‘미투’와 여성운동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여성에게 모성성을 강요하는 문단’과 같은 구체적인 문제들을 생각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그전에도 많은 여성 문인의 노력과 문장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앞선 세대의 움직임을 잘 받아들여서 풀어나가는 것이 현재 저와 같은 20대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주체적이고 다양한 여성 서사가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여성의 신체 또한 기성 문인이 주로 사용하는 ‘분홍빛 뺨, 딸애의 젖가슴, 붉은 입술, 빨간 자궁’ 등 선정적이고 저급한 성적 판타지에 가까운 이미지를 탈피해야 해요. ‘검은 겨드랑이, 칙칙한 입술, 가뭇한 수염, 팔다리의 털, 캐캐한 사타구니’를 가진 여성도 인간의 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다 늙은 할배 영감이 나의 소녀니 뭐니, 딸애의 젖가슴이 자두니 복숭아니, 묘사하는 것 너무 구역질 나고 더러워요. 여성 문인들은 쪼글쪼글한 호두를 까다가 아버지의 생기롭고 젊은 시절의 고환이 생각나 눈물이 고였다, 같은 표현 쓰지 않는데 말이죠. 이런 문장을 바꾸거나 미러링해서 보더라도 얼마나 기괴한지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여성을 그리는 이미지가 다양해질수록 기존의 낡은 ‘성녀(모성성) 프레임’에 대한 수식 또한 사라질 거라고 믿고 있어요.
▣ 이 령: 시인의 역할이라고 할까요? 시인의 책무라면 어떤 것일까요?
◼김희준: 저는 사실 시인이 역할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조금 우습다고 생각해요. 역할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에는 누군가를 교화시키고 이끌어가고, 뭔가 세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장황함이 숨겨져 있어요. 소수이지만 제가 만나본 시인들은 마치 세상에 버려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제 한 몸 지키기도 위태로워 보이는 사람들이었는데…. 혹시 그렇기에 이런 질문을 하신 걸까요? 너희는 세상에 필요한 존재니까 책무를 져서라도 아등바등 붙어있으라는 의미일까요? (웃음) 그렇다면, 그런 의미로서 시인의 역할은 앞으로도 세상을 예쁘고 귀엽게 보는 것이 아닐까요. 시인들은 자신에게만 유독 관대하지 못한 부분이 많은데 조금 더 본인에게 너그러워졌으면 좋겠어요. 그게 책임이라고 해두고 싶어요. 그리고 만약 이게 답이 될 수 없다면, 사회에 끼치는 ‘선한 영향력’이라고 조심스럽게 답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정하해: 시인의 역할이라면? 모두 각자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겠죠, 저 같은 경우는 가령 자연 속의 여러 가지 이름을 가까이 했을 때 말이 새어나오지 못하는 부분의 몸짓, 즉 그것을 대필해 받아 적는 불우든 아름다운 한 찰나든 대신 울어주는 역할이 시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시인이라는 관을 썼다면 시에 대한 예의와 또한 시인으로써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정독으로 사회적인 품행을 먼저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너도나도 시인이라는 반열에 오르기 위해 시를 따라다니는 병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만 적어도 시인이라면 날밤을 새우듯 단어 하나에 온몸을 던져 넣는 그런 치열한 열정이 시인의 책무가 아닐까요,
◼정숙자: 詩는 언어의 사원이라고 단일한 의미로 회자되고 있지만, 언+행의 의미로 묶어 보아야 될 듯합니다. 사원에서는 오히려 말보다도 행함을 더욱 중요시하는 까닭이지요. 그러므로 시인은 언어뿐 아니라 행위까지도 신중해야겠거니, 헤아려보곤 합니다. “詩는 언어예술이지만 詩人의 삶은 종합예술이다.(2019.10.24.-23:30)”라는 저의 메모 쪼가리가 서진 아래 놓여 있군요.(ㅎㅎ)
▣ 이 령: 마지막으로 시인으로서의 향후 계획이 있으시다면 어떤 것이 있으신지요. 그리고 동료 시인들과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정숙자: 향후 계획은 너무 열심히 살지 말자. 슬렁슬렁 살자,입니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잘 될지 모르겠어요. (ㅎㅎ) 그리고 동료 시인들과 나누고 싶은 얘기는 ‘코로나19’ 소멸될 때까지 매우매우 건강하시길, 언제 어디서나 문운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입니다.(ㅎㅎ)
◼정하해: 벌써 네 권의 시집을 내었습니다. 제가 등단하고 나서 각오를 한 게 있는데 몇 권의 시집을 내고 나서 문학상을 받는 거였어요, 그 동안 시에 나를 바치는 일, 나를 고아내는 일, 그렇게 치열하게 썼습니다. 2018년 네 번째 시집으로 문학상을 받고나서 한숨 돌렸었죠, 이제는 시인의 아픈 눈으로 사물을 보고 조근조근 밀담을 나누는 그런 산문집을 한 권 내고 싶은데 언제가 될지는 기약이 없습니다.
동료 시인들이라기보다는 동시대의 시인으로 살아가는 업은 아름답고 처연한 직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록 가까이서 시담을 나눌 수는 없지만 그러나 시로 느끼는 동질의 사이여서 좋은 시를 읽게 되는 날은 가까이 있는 듯 느낍니다. 서로 위로를 받고, 응원을 나누는 너도 되고, 나도 될 수 있는 행간의 문자처럼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김희준: 향후 계획은 세워둔 것이 없지만, 모든 시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제가 아주 사랑한다고요.(웃음) 늘 고민하던 말이었는데 마땅한 기회가 없어서 꺼내지 못했거든요. 선생님, 시가 너무 좋아요. 매일 절절 생각해요. 정말 아끼고 사랑해요.
▣ 이 령: 켄 웰버가 말했던가요? 학습과 습득에 의한 시인, 우린 그들을 존경합니다. 타고난 시인, 우린 그들을 사랑합니다. 오늘 긴 시간 대담을 함께 하며 진행자로서 제가 느낀 점은 세분의 선생님들의 공통점은 바로 존경받고 사랑받는, 받으실 분들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 주시고 ‘2020년 웹진시인광장 특집대담’ 함께 해 주신 세 분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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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진 『시인광장』 2020-4월호 <시인광장> 펴냄
* 이 령/ 2013년 『시사사』로 등단
* 정하해/ 2003년 『시안』으로 등단
* 김희준/ 2017년 『시인동네』로 등단
* 정숙자/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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