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장경렬_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발췌)/ 328번 시 : 에밀리 디킨슨

검지 정숙자 2020. 1. 26. 16:42



    328번 시


    에밀리 디킨슨(미국, Emily Dickinson, 1830-1886, 56세)



  새 한 마리가 보도에 내려와 앉았어요,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녀석이 지렁이를 반으로 물어 찢더니,

  날로 냉큼 삼키더군요.


  그리고는 근처의 풀잎 위에 맺힌

  이슬을 마셨지요.

  그런 다음 벽 쪽을 향해 옆으로 폴짝 뛰어,

  딱정벌레에게 길을 비켜 주더군요.


  녀석은 잽싼 눈을 민첩하게 돌려

  여기저기 사방을 훑어보더군요.

  내 생각에, 녀석의 눈은 겁먹은 구슬 같았어요.

  녀석이 벨벳처럼 보드라운 머리를 휘젓더군요.


  마치 위험에 처해 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난 녀석에게 빵부스러기를 건넸지요,

  그랬더니, 녀석은 날개를 편 뒤에

  솔기 하나 남기기 어려울 만큼 은빛 찬란한


  바다를 가르는 배의 노보다 더 부드럽게,

  날개를 저어 집으로 날아갔지요.

  아니, 한낮의 강둑 안쪽에서 물 한 방울 튀지 않게

  헤엄치다가 날아오르는 나비들보다 더 부드럽게.

    -전문-



  ▶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에밀리 디킨슨과 자연을 향한 시인의 눈길(발췌)/ 장경렬/서울대 명예교수

  있는 그대로 단아하면서도 정갈하고 정갈하면서도 따뜻한 정경 및 이를 응시하는 섬세하면서도 다감하고 다감하면서도 차분한 시인의 마음이 짚이는 작품이 아닌가. 시인의 눈길에 "지렁이를 반으로 물어 찢"어 "날로 냉큼 삼키"는 "새 한 마리"가 잡힌다. 잔인해 보이는가. 만일 얼룩말을 잡아먹는 사자나 악어가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이라면, 그의 눈에는 그렇게 비칠 것이다. 하지만 새로서는 인간이 식사를 하듯 나름의 식사를 하는 것일 따름이다. 추측건대, "딱정벌레"에게 길을 양보할 정도라면, 시인의 눈길을 끈 새는 작고 연약한 존재일 것이다. 그런 새이기에, 그처럼 남에게 길을 내 주는 등 조심스럽게 살려고 해도 세상은 험난하기만 한 위험 지대이리라. 어찌 "겁먹은 구슬"과도 같은 두 눈을 민첩하게 돌려/ 여기저기 사방을 훑어"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심스러운 새에게는 선의의 마음으로 "빵부스러기"를 건네는 시인조차 경계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어찌 날개를 펴 자리를 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시의 압권에 해당하는 것은 그처럼 시인을 피해, 시인의 추측으로는 "집으로" 날아가는 새의 날갯짓에 대한 시인의 묘사다. 여기에 동원되는 것은 "배의 노"가 가르더라도 솔기-즉, 천을 꿰맬 때 남는 실과 바늘 자국-조차 남지 않는 "은빛 찬란한/ 바다"의 이미지, 그리고 "나비들"이 물 위에서 헤엄을 치다가 날아오르더라도 "물 한 방울"도 튀지 않는 평온한 강물 위 정경의 이미지다. 다시 말하지만, 단아하면서도 정갈하고, 정갈하면서도 따뜻한 정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정경을 되풀이하여 떠올리게 하는 이 시만큼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도 없으리라. 시의 존재가 우리에게 소중함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디킨슨과 같이 섬세한 시인의 눈에 비친 자연의 정경은 때로 시인 자신이 "겁먹은 구슬"과도 같은 눈을 지닌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바라보는 자연의 정경과 다름없는 것일 수도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자연 속에서의 인간은 때로 작고 연약한 새와 같은 존재일 수도 있고, 그에게 자연은 두려움과 신비의 대상일 수도 있다. 아니, 이유가 있건 없건 자연과 마주하여 두려움에 떨기도 하는 아이와도 같은 존재가 인간일 수 있는 것이다. 원시 문명의 인간이 이해하는 자연 세계가 그런 것임을 신화가 증명하고, 우리가 어린 아이 시절에 느끼던 어둠에 대한 공포가 이를 증명하기도 한다.(p.49-51) 

 


  * 블로그주 : 책에 영문원본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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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청춘』2019-겨울호 <영미시 산책 ⑧> 에서

   * 장경렬/ 인천 출생, 비평집 『신비의 거울을 찾아서』『시간성의 시학』등 다수, 서울대 영문과 졸업, 미국 오스틴 소재 텍사스대학교 영문과 박사학위 취득, 현재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