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피에르 르베르디(Pierre Reverdy)/ 번역 : 정선아
내 손가락이 피 흘린다
그것으로
나 네게 글을 쓴다
나이 든 왕들의 통치는 끝났다
꿈은 천장에 매달린
무거운
한 조각 햄이고
네 엽궐련의 재는
불빛을 오롯이 품고 있다
굽이진 길목에서
나무들이 피 흘린다
암살하는 태양이
피로 물들인다 소나무들과
습한 초원을 지나는 이들을
첫 올빼미 잠드는 저녁
나는 취해 있었다
늘어진 내 사지가 거기 매달려 있고
하늘이 나를 떠받치고 있다
나 아침마다 눈을 씻는 하늘
붉은 내 손은 하나의 낱말
목멘 흐느낌이 떨리는 짧은 호소
압지 위에 흘린 피
잉크는 거저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는 세계 끝에서
멀리멀리 가는 검은 시냇물들 사이의
늪들 그 얼룩 위를 나는 걷는다
그 끝에서 들리는 소리는 샘물 또는 내 심장에서 흐르는 핏방울
나팔 소리가 창공에서 비상소집을 알린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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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베르디 시선』 2019. 7. 17. <지식을만드는지식> 펴냄
* 피에르 르베르디 (Pierre Reverdy, 1889~1960, 71세)/ 프랑스 남부 나르본 출생, 상징주의에서 초현실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20세기 전반에 등장했다. 프랑스 현대시에서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독보적인 목소리를 지킨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 정선아/ 이화여대 외국어교육과 및 동대학원 졸업,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랭보 연구로 불문학 박사학위 취득, 1950년대 이후 프랑스 현대시와 한국 현대시에 관심을 두고 '현대시에 나타난 해체 양상과 서정에 대한 반성', '언어 예술의 투명성과 불투명성 : 예술 사회학적 관점에서' 등 다수의 논문을 저술했으며, 현재 이화여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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