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박찬일_ 청년 브레히트와 니체 철학(발췌)/세상의 친절함에 대하여:브레히트

검지 정숙자 2020. 3. 12. 03:00



    세상의 친절함에 대하여Von der Freundlichkeit der Welt (1922)


    브레히트(1898-1956, 58세)



  1

  차가운 바람이 가득 부는 이 땅에

  너희 모두는 벌거숭이 아이로 왔네.

  가진 것 하나 없이 추위에 떨며 누워 있었네.

  그때 한 여자가 기저귀를 채워줄 때까지는.


  2

  어느 누구도 너희를 환호하지 않았네. 너희를 열망하지 않았네.

  너희를 차에 태워가지 않았네.

  여기 지상에 너희를 아는 사람은 없었네.

  그때 한 남자가 너희 손을 잡아줄 때까지는.


  3

  차가운 바람이 가득 부는 이 땅을

  너희 모두는 딱지와 부스럼에 덮여 떠나네.

  거의 이 세상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두 줌의 흙을 뿌리네.

    -전문, (p.190) 



   ▶ 청년 브레히트와 니체 철학(발췌)_ 박찬일/ 시인 

   브레히트(1898-1956, 58세)는 마르크스주의자였다. 그의 서사극(혹은 변증법적 연극)은 세상의 변혁이 목적이었다. 그의 문학은 목적문학의 대명사였다. 참여문학의 대명사였다. 그는 문학의 '사용가치'를 일관되게 강조하였다./ 그런데, 그가 니체(1844-1900, 56세)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고 하면? 그러나 사실이다. 브레히트가 마르크스주의 세례를 받기 이전에 쓴 『가정기도서』의 많은 시편들은 니체주의자(Nietzscheaner)로서의 면모를 나타내고 있다. 바로 전의 많은 표현주의자들이 니체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청년 브레히트 역시 니체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가정기도서』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과 같은 해(1927년)에 출판되었다. 안츠Th. Anz는 『가정기도서』의 시편들을 청년 브레히트의 "시로 작성한 존재철학"(Th. Anz, Der-Kein Thema Mehr, in: Deutsche Gedichte und ihre Interpretation, 10 Bde, hrsg. v. M. R.-Ranicki, Frankfurt/M. 1996, Bd. 7, 332면) (p.187-188)이라고 불렀다.



  브레히트의 이 시에는 니체의 그늘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니체가 신에 대한 사망선고를 내렸을 때 이것은 서양 형이상학의 이원론적 전통을 포함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신들이 만약 존재한다면 내가 신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참아낸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신들은 존재하지 않는다."(F. Nietzsche, Also sprach Zarathustra, Mit einem Nachwort von A. Baeumler, Stuttgart 1969, 91면)  니체가 '신'이 아니라 '신들'이라는 복수형을 쓴 것은 그가 부인한 것이 기독교의 신만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보는 것은 동굴 속의 불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불은 동굴 밖에 따로 있다고 하였다. '현상'과 '본질'을 구분한 것이다. 마치 가톨릭에서 현세와 내세를 구분한 것처럼. 물론 플라톤에게 중요한 것은 본질, 곧 이데아였다. 가톨릭에서 중요한 것이 여기에서의 삶(현세의 삶)이 아니라 저기에서의 삶(내세의 삶)이었던 것처럼. 니체의 사망 선고는 그러므로 (신을 포함한) 따로 존재하는 본질에 대한 사망선고였다.(1927년) 현상이 곧 본질이라는 선언이었다. '신들이 만약(하이데거는 그의 『Holzweg』에서 니체의 "신은 죽었다Gott ist tot"라는 말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신은 죽었다'라는 말은 물론 기독교 신에 대한 믿음을 의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니체에게 있어서 신이나 기독교적 신이라는 이름은 초감각적 세계ubersinnliche Welt, 혹은 이념Ideen이나 이상Ideale의 영역을 포괄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서양에서 플라톤 이후(후기 그리스 이후), 그리고 플라톤 철학의 기독교적 해석 이후 진정하고 본질적인 세계로 간주된 것이다. 감각적 세계는 이에 반해 현세의, 가변적인 세상, 가상의, 실제적이지 않은 세상을 의미하였다. 칸트에게 있어서도 감각적 세계는 물리적 세계physische이고, 초감각적 세계는 형이상학적 세계metaphysische Welt였다. 요컨대 하이데거는 '신이 죽었다'는 것을 플라톤주의로 대변되는 서양철학, 즉 형이상학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 M. Heidgger, Hoizweg, Frankfurt/M. 1957,199-200면) 존재한다면 내가 신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참아낸다는 말인가!'

  내세가 부재하다는 인식, 신이 부재하다는 인식,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인식은 인간에게 극단적인 허무주의를 야기시킨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것이다. 인생은 더 이상 공로功勞가 아니라, 그것 자체로 끝나는 비극인 것이다. 니체는 그러나 이러한 허무주의, 비극적 숙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대지'를 운명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몰락까지 동경하는 자였다. 기꺼이 몰락하려고 한 자였다.(F. Nietzsche, a. a. O., 11-12면 참조) 죽음에의 두려움을 모르는 자, 피안으로부터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자, 지상에서의 충실을 추구하는 자였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브레히트는 「세상의 친절함에 대하여」에서 삶이란 차가운 바람을 맞는 것이며, 고독한 것이며, 고통스러운 경험일 뿐이라고 하였다.(「나의 어머니Meiner Mutter(1920) 라는 시에서도 브레히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흙에 묻었다./ 꽃들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를 너울너울 날아간다……/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압박하지 않았다./ 그렇게 가벼워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필요로 했을까." 가벼운 어머니의 몸무게에서 브레히트는 생전의 고통을 읽어내고 있다.) 그러나 브레히트는 같은 시에서 인간은 그 고통까지, 고통을 주는 세상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인식 또한 보여주었다. "거의 이 세상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두 줌의 흙을 뿌려주네." 니체처럼 인간은 대지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인식하였다. 죽음을 포함하여! (p. 191-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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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0-2월호 <이달의 리바이벌> 에서

  * 박찬일/ 시인, 춘천 출생, 1993년 『현대시사상』에 「무거움」「갈릴레오」등을 발표하며 시단에 데뷔, 시집『화장실에서 욕하는 자들』『나비를 보는 고통』『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모자나무』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