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포스티노
황지우
자전거 밀고 바깥 소식 가져와서는 이마를 닦는 너,
이런 허름한 헤르메스를 봤나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라니까는
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답한 너,
내가 그 섬을 떠나 너를 까마득하게 잊어먹었을 때
너는 밤하늘에 마이크를 대고
별을 녹음했지
태동하는 너의 사랑을 별에게 전하고 싶었던가,
네가 번호 매긴 이 섬의 아름다운 것들, 맨 끝 번호에
그대 아버지의 슬픈 바다가 롱 숏, 롱 테이크되고:
캐스팅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나는 머리를 박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떤 회한에 대해 나도 가해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땜에
영화관을 나와서도 갈 데 없는 길을 한참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휘파람 불며
신촌역을 떠난 기차는 문산으로 가고
나도 한 바닷가에 오래오래 서 있고 싶었다
-전문,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 1998, 75~76쪽
▶ 영화와 시, 그리고 영화 속의 시(발췌)_ 이현승
흥미로운 것은 황지우가 이 영화에서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 대상이 파블로 네루다라는 점이다. "이런 허름한 헤르메스를 보았나"랄지, "어떤 회한에 대해 나도 가해자가 아닌가"와 같은 구절에서 그런 관점이 읽힌다. 그러니까, 이 시의 발화 시점은 심리적으로 영화의 관람 시점과 멀지 않고, 극장에서 받은 그 가슴 뭉클함을 지면으로 빠르게 크로키하고 싶었던 메타적인 욕구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시의 주조음을 이루는 죄책감이랄까 가책감이랄까 하는 것은 같은 시집의 시 「뼈아픈 후회」에서도 드러나듯 자신의 적극적 주체성을 일종의 중심주의로 성찰하는 일을 극단적으로 밀고가는 것과 관련이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열정적으로 달려가던 제 청춘의 뒤통수를 객관화해보는 나이란 성숙과 쓸쓸함이 등우량선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시 속의 화자는 그 일방적인 열정이 낳았을지 모르는 어떤 그르침을 반성하는 사람으로서, 영화의 감동과 함께 제시된 파국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을 떠안은 채 "머리를 박고 의자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어떤 따가운 자책감으로 "갈 데 없는 길을 한참" 헤매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황지우의 시에서 저 '회한'은 이중적이다. 하나는 나도 못 갈 길을 가보라고 다독인 것에 대한 회한이고(시 같은 건 쓰지 말라고 말리지 않은?) 다른 한 회한은 정작 밟혀 죽을 때까지 가보지 못한 자신을 어느 순간 자각한 회한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 영화의 소재 때문에 시인들은 영화의 감동과 함께 어떤 가책감이랄까 회한 같은 것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p.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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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학』2019-가을호 <기획특집/ 시의 언어와 영화의 감각> 에서
* 이현승/ 2002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아이스크림과 늑대』『생활이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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