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성공인가?
장상용
세계를 휩쓸고 있는 열풍의 주인공 방탄소년단(BTS)의 앨범 중 <Face yourself>가 있습니다. 앨범 <Love yourself>와도 주제 면에서 연결되는 이 앨범은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혼돈을 느끼는 개인들에게 '자신을 직면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인간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주문이 바로 '자신을 직면하라'는 것이 아닐까요?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자신 탓임을 인정하는 이는 아주 드뭅니다.
미국 남북전쟁 시기(1861-1865)의 시인 랠프 왈도 에머슨(1803-1882)은 '자신을 직면하라'는 위대한 철학의 원류로 볼 수 있는 사상가입니다. 한국에서는 에머슨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의 지성계에서 에머슨이 차지하는 지위는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습니다. 증오와 인종차별로 얼룩졌던 19세기 미국을 하나의 용광로 속에 녹인 이 정신적 지도자는 헨리 소로(1817-1862), 월트 휘트먼(1819-1892), 마크 트웨인(1835-1910) 등 미국 문인들의 정신적 각성을 촉발시켰습니다.
남북전쟁 당시 흑인들로만 구성된 메사추세츠54보병연대의 최초 참전을 다룬 영화 <영광의 깃발(Glory)>을 보면, 에머슨이 추구하는 북군과 흑인들에게 얼마나 큰 정신적 지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화 속에서 흑인 지식인이지만 이등병으로 참전하는 주피터 샤츠는 초절주의(超絶主義, Transcendentalism), 자기신뢰(Self-reliance)와 민권을 제시한 에머슨과 그의 시에 열광합니다. 입만 열면 '에머슨'이란 단어가 나올 정도입니다.
"에머슨이 없었다면 진정한 의미의 미국 문학은 탄생할 수 없었다"라는 문학적 평가를 넘어, 저는 "에머슨이 없었다면 하나로 통합된 현대 미국이 탄생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를 조심스럽게 내놓고 싶습니다. 미국과 비슷하게 6.25라는 남북전쟁을 겪은 우리는 약 7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상처와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에머슨처럼 남북을 아우르는 정신적 구심점이 없는 것이 주요원인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직관을 통해 진리를 파악하려는 그의 신비주의적 면모
에머슨의 초절주의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혁신적이고 특이한 사상이었습니다. 원래 기독교 목사였던 에머슨은 동양사상에 깊이 심취하며 내부의 정신적 자아가 외부의 물질적 존재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초절주의를 탄생시켰습니다. 이성이 아니라, 직관을 통해 진리를 파악하려는 그의 신비주의적 면모가 미국 지식인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자연이 그의 삶과 사상에서 중심이었다는 점에서 영국 서정시인 윌리엄 워즈워드(1770-1850)와 연결됩니다.
"궁극적으로 신성한 것은 자신에게 정직한 것이다. 먼저 자신에게 결백을 선언하라. 그러면 세상이 너를 인정할 것이다"라는 에머슨의 초절주의는 "네 행동의 준칙이 보편적인 법칙으로 정립될 수 있게 행동하라"는 철학자 엠마누엘 칸트(1724-1804)의 정언명령에 그 뿌리가 닿아있습니다. 나의 행동이 세상 어디에 적용해도 아무 문제없이 보편화할 수 있는 도덕률이 되도록 하라는 칸트의 명령에 필적할 만하죠. 동양사상으로는 대학과 중용의 '신독愼獨'이 초절주의에 가장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에머슨은 자신의 철학에 따라 과감하게 행동했습니다. 정통 교리에 집착하지 않고 다양성과 자유를 찬미하던 그는 교회와 충돌했고, 결국 목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청교도정신을 바탕으로 자유와 평등, 직관과 자연, 실천 등을 강조한 그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미국을 하나로 통합하는 사상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인생의 성공이란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생각은 시 한 편에 담겨있습니다.
무엇이 성공인가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받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시, 에머슨-
이 시에서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이라는 구절이 인상적입니다. 저 역시 에머슨의 조언대로, 제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행동하며 그러한 '소박하면서도 위대한' 성공을 거두어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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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엠포엠』2019-여름호 <장상용의 라임라이트 30>에서
* 장상용/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 외국어대 대학원 러시아 문학 전공, 일간스포츠 만화와 문화 전문기자, EBS 스토리 코치,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스토리텔링 온라인 강사, SICAF(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피스티벌) 큐레이터 등을 지냈다.『전방위 문화기획자를 위한 스토리텔링 쓰기』『프로들의 상상력 노트』『내가 펜이고 펜이 곧 나다』『CEO, 만화에서 경영을 배우다』『사랑책』등의 책을 썼다. 현재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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