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
앤 섹스턴(1928-1974, 46세)
마을은 존재하지 않아요,
검은 머리의 나무 한 그루가 익사한 여인처럼
뜨거운 하늘 속으로 미끄러지듯 빠져 있는 곳 이외에는.
마을은 고요하고, 밤은 열한 개의 별로 들끓고 있어요.
아, 별이 빛나는 밤이여! 나,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요.
세상은 움직이고, 모든 것이 살아 있어요.
달조차 주황빛 족쇄 안에서 부풀어 올라
신이 그러하듯 눈에서 아이들을 뱉어내고 있어요,
보이지 않는 늙은 뱀이 별들을 집어삼키고 있네요.
아, 별이, 별이 빛나는 밤이여! 나,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요.
거칠게 돌진하는 한밤의 야수 속으로,
그 거대한 용에 집어삼킴을 당한 채,
나, 내 삶에서 분리되고 싶어요,
깃발도 없이,
욕망도 없이,
울음도 없이.
▶ 별이 빛나던 밤, 그때의 밤하늘을 기억하며/- 반 고흐의 그림과 섹스턴 시 사이에서(발췌)_ 장경렬
앤 섹스턴(Anne Sexton)은 지극히 사적私的인 자기진술을 담은 이른바 '고백 시편'으로 인해 널리 주목을 받던 미국의 시인으로, 1982년에 태어나 1974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내가 그녀의 시와 씨름하던 무렵에 그녀는 4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진 것이다. 반 고흐가 그러했듯 그녀도 살아생전 정신병(조울증)에 시달렸던 예술가로,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물론 그런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나는 다만 그녀의 시 「별이 빛나는 밤에」제사題辭)로 등장하는 반 고흐의 편지 인용문에 이끌려 그녀의 시를 읽게 되었다. 아무튼, 제사에 기대어 말하자면, 반 고흐는 그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것은 나에게 무언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느낌을,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종교라고 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느낌을 갖지 않은 수 없게 해. 그래서 한밤에 밖으로 나가 별을 그리지."
평생에 걸쳐 반 고흐의 화업畵業을 옹호하고 그를 뒷바라지했던 동생 테오에게 전하는 이 구절에서 '그것'이 지시하는 바는 무엇일까. 반 고흐의 예술적 소재가 되었던 나무와 꽃과 들과 바람과 언덕과 하늘과 하늘의 별들? 그것들이 모여 이룬 자연의 풍경? 시시때때로 색채와 모습을 바꾸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 여기서 우리는 반 고흐가 쌩 레미의 쌩-뽈 정신병원에 머물 적 보았을 법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상상에 떠올려 볼 수도 있겠다. 추측건대, 그 밤하늘은 휴전선 근처에서 내가 보았던 밤하늘과 바를 바 없지 않았을까. 그런 밤하늘과 마주했을 때 나는 어떤 상상을 했던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경외감으로 인해 그냥 멍한 상태로 서 있지 않았던가. 어찌 종교적 경외감이라는 말 이외에 적절한 표현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반 고흐가 말하는 "종교"는 세상 또는 자연의 신비에 대한 근원적인 경외감을, 인간의 표현 수단으로는 도저히 드러낼 수 없는 그 어떤 감정을 전하기 위해, 그것도 망설임 끝에 동원한 말이리라.
그 어떤 표현 수단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경이를 드러내기 위해 특유의 언어를, 선과 색채를, 음을 동원하는 이들이 예술가가 아닌가. 인간의 인식 및 표현 능력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신비와 경이를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내는 일에 몸을 옴츠리지 않는 이들이 예술가일 것이다. 반 고흐가 한밤에 밖으로 나가 밤하늘의 별들을 그리려 했다면, 이는 바로 그 때문이리라. 그리고 섹스턴은 종교적 차원의 경이로움을 일깨우는 반 고흐의 그림과 마주하여 위와 같은 시를 썼던 것 역시 그 때문일 것이다. (p.96-98)
* 블로그주 : 책에 영문원본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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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청춘』2019-봄호 <영미시 산책 ⑤> 에서
* 장경렬/ 1953년 인천 출생, 비평집『미로에서 길 찾기』『예지와 무지』등 다수, 서울대 영문과 졸업, 미국 오스틴 소재 텍사스대학교 영문과 박사학위 취득, 현재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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