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전가戰歌
아르튀르 랭보(1854~1891, 37세)
봄이 뚜렷하지
초록 소유지의 한가운데서
티에르와 피카르의 비행이
작렬하는 광채를 내뿜고 있으니!
오 오월이여! 정신 나간 맨 엉덩이들!
세브르, 뫼동, 비뉴, 아니에르여
반가운 이들이 봄날의 것들을
파종하는 소리를 들어보라!
그들은 군모와 장검, 그리고 큰 북은 있으나,
양초가 든 낡은 상자는 없고
또한 기어코, 기어코… 작은 배들은
저 붉게 물든 호수의 물살을 가른다!
은신처 위로 노란 보석들이
쏟아져 내릴 때면
우리는 더없이 흥청대는 거지.
티에르와 피카르는 에로스들,
헬리오트로프을 앗아가는
그들은 석유로 코로의 그림을 그리고
이제는 자신들의 군대로 야단법석을 떤다…
그들은 으뜸 협잡꾼들의 가족들!…
하여 글라디올러스 꽃밭에 누워 파브르는
눈을 깜빡거려 눈물 흘리고
후춧가루 문질러 코를 훌쩍거린다!
도시의 포석은 뜨거워라,
너희들이 석유로 몸을 씻어대도
마침내, 우리는 너희들이 하는
짓거리를 흔들어 놓을 거야
하여 오랫동안 웅크린 채
거드름피우는 부딪힘들 사이에서
가지들이 부러지는 소리 들을 것이니!
▶ 퀸, 도어즈, 그리고 랭보/- 폴 드므니에게 보낸 편지(발췌)_ 이찬규/ 시인, 문학평론가
저는 견자見者여야 하고 견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시인은 모든 감각의 오랜, 거대하면서도 이론적인 착란에 의해 견자가 됩니다. 사랑과 고통, 광기의 모든 형태들을 스스로 탐색하고, 자신 속에서 모든 독소들을 고갈시켜 그것들의 정수만을 갈무리하는 것입니다. 모든 신앙, 모든 초인적인 힘들이 필요한 엄청난 고통, 그 고통 속에서 시인은 고귀한 환자, 위대한 범죄자, 거룩하게 저주받은 자, - 그리고 지극한 학자! - 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미지에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자신의 영혼을 어느 누구보다도 포실하게 단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미지에 도달하여 실성한 듯, 마침내 바라보는 것들에 대한 이해력을 상실할 때, 그는 그것들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가 들어본 적 없고 명명할 수도 없는 것들 속에서 도약하다 쓰러지면, 또 다른 가공할可恐할 일꾼들이 도래할 것입니다. 그들은 앞서 쓰러진 자의 그 지평에서 시작할 것입니다!(p. 118)
「견자의 편지」에는 랭보(Arthur Rimbaud)가 '성시가聖詩歌'로 명명한 세 편의 시가 들어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시적 수준이 높지 않으나, 시대적 상황에 대한 그의 민감성과 현실 참여 의지를 일목요연하게 헤아려 볼 수 있는 시들이다. 랭보의 시세계에서 흔치 않은 경우라 모두 번역해서 게재한다. 첫 번째 시 「파리 전가戰歌」는 그의 '코뮌주의' 그러니까 시민 혁명으로 이르는 그의 급진 공화주의적 성향이 바탕이 된다. 그가 1871년의 파리 시민 봉기로 생겨난 '파리 코뮌'을 절대적으로 지지했다는 점에서는 연구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하지만 그의 직접적인 참여 여부에는 의견이 엇갈린다. 두 번째 시 「내 작은 연인들」은 당시 유행했던 낭만주의적 '클리셰'를 뒤집는다. "별봄맞이꽃"을 함께 따먹던 첫사랑 여인, 시적 영감을 일으켰던 그 뮤즈는 낭만주의 시인들에게 있어서 영원한 아름다움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랭보는 그 뮤즈의 "머릿기름 냄새" 때문에 구역질이 난다. 그는 그녀를 자신의 무릎에 눕게 하지만(낭만주의 시인들의 대표적 클리셰), 채찍을 든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속 내 낡은 단지를/ 짓밟아 버려라." 여러 연구가들이 이 시를 언급할 때 랭보의 연애 실패담을 언급한다. 그때부터 여성혐오 경향이 생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견자의 편지」에 들어 있는 그의 여성관도 다시 환기해 볼 필요가 있다: 여성에 대한 끝없는 예속이 와해되고, 여성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위하는 시대가 오면, 그리고 남성이, 지금껏 비정했던 남성이 여성을 속박으로부터 풀어준다면 여성 또한 시인이 될 것이며 미지를 발견할 것입니다! 여성의 사유 세계가 우리의 그것과 다를까요? - 여성은 기이하면서 가늠할 수 없고, 반동적이면서 그윽한 것들을 찾아낼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의 여성관은 당시의 남성우월주의와 개인적 한도를 헤아려 본다면 나름대로 상당한 개혁성을 지니고 있다. 세 번째 시 「웅크린 모습」은 랭보의 독성瀆聖이 어느 사제의 게으르게 늙어가는 모습을 통해 나타나 있다. 그의 독성은 좀 씩씩한 데가 있다. 저주받을 짓을 하기 전에 이미 저주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산문시 속에서 다음과 같은 열거가 서슴없다: "이교도의 피가 깨어난다! 성령이 근접하니, 나의 영혼에 고귀함과 자유를 주어, 그리스도는 왜 나를 돕지 못하는가. 오호! 복음서는 시들었다! 복음서! 복음서! 나는 게걸스럽게 신을 기다린다. 진정 영원히 나는 열등 민족에 속해있다. (…) 수영, 풀 매기, 사냥, 특히 흡연하기, 끓는 금속처럼 센 술을 마시기, - 내 사랑하는 선조들이 불 주위를 돌며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까 그의 '살부의식'은 하느님 아버지에게로 이른다.(p. 123-124)
* 블로그주 : 책에 「내 작은 연인들」,「웅크린 모습」, 그리고 세 편 모두 영문원본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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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청춘』2019-봄호 <아르튀르 랭보, 태양의 편지 ④> 에서
* 이찬규/ 1966년 서울 출생, 『시문학』으로 시 부문 등단 &『작가세계』를 통해 문학평론 시작, 주요저서 『횡단하는 문화, 랭보에서 김환기로』『불온한 문화, 프랑스 시인을 찾아서』등, 공저『시티컬처 노믹스』『프랑스 문화예술, 악의꽃에서 샤넬 n5까지』『문학도시를 사유하는 쾌감』등, 그 외 다수의 프랑스 문학 작품들 번역,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 프랑스 리옹2대학에서 문예학 박사학위를 받음, 현재 숭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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