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부재도시(不在都市)/ 나가에 유키(永方佑樹) : 한성례 옮김

검지 정숙자 2018. 10. 29. 20:30

 

 

    부재도시不在都市 

 

    나가에 유키永方佑樹/ 한성례 옮김

 

 

  돌고 도는 기억이

  파리해지고

  시간이 갈라져 간다

 

  (꽃도 그 무엇도 형태를 가진 것들은 다 사라졌습니다

  그저 그리움만이 향기롭게 젖어

  수면을 흘러갑니다)

 

  모라*는 실러블*에 녹아

  부서진 기억을 되살리고

 

  환했던 옛 영화는 세상 끝에 가서 파묻혀

  흔들리며

  고요히 기울어가고

 

  끊임없이

  궤멸을 휘감고 태어난 수천 수억의 분자가 온기를 반짝이며

  메틸렌 블루 색으로 밀려온다

 

  (인광처럼 푸르게 반짝이는 것.

  저것은 꿈입니다.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는 외로움을 청결하게 지킨 것만이

  흐르지 않고 언제까지나

  물밑에서 깜박이고 있습니다)

 

  예전에 존재했던

  수없이 엎드린 번영과 활기

  속삭임

  분개

  그 모두가 지금은 해발 아래

 

  반복을 되풀이하며

  집요를 무너뜨리고

  언젠가 다시 반복될 날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메틸렌 블루의 불빛이 반짝이고. 밀려오고.

  그림자만이

  지금은 곧게

  수면을 달린다

 

  (물결 이랑에 반사하고 있는 것

  헬싱키, 뉴욕, 타이베이, 방콕,

  쿠알라룸푸르, 멕시코시티, 서울, 도쿄

  아닙니다 저것은 꿈입니다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는 하찮은 것.

  도시도, 꽃도, 엄청났던 모든 것들은

  언젠가 분명

  사라졌을 테니까요)

   -전문-

 

   <옮긴이 주>

  * 모라mora: 단음절 하나의 단위. 한 음절의 최소단위를 말함.

  * 실러블syllable: 음절音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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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청춘』 2018-가을호 <일본 특집> 에서

  * 나가에 유키永方佑樹(1976~)/도쿄 출생, 시집『쓸쓸한 하나』『부재 도시』 

  * 한성례/ 1955년 전북 정읍 출생, 시집『실험실의 미인』『빛의 드라마』등, 번역서『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붓다의 행복론』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