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전화 외1편
와카마쓰 에이스케若松英輔/ 김옥희 옮김
바다가 펼쳐지는 언덕에
하얀 공중전화 박스가 있고
거기엔
선이 끊어진
검정색 전화기 한 대
이와테현 가미헤이군 오츠치정에 있는
바람의 전화
수화기를 들어
귀에 가져가 봐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찾아오는 사람은 너나 없이
망자들을 향해
말을 건네려 한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것은
전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가 아니고
온전히 전할 수 없는 것이 있어서다
말이란
말이 될 수 없는 것의
현출일 뿐이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것이
가득 차올랐을 때
사람들은
말과의 관계를
최대한
심화한다
한숨 짓고
흐느끼고
눈물짓고
말을 잃어버리고 난 후에야
비로소
죽은 자들의
말없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얼마든지
슬퍼해도 되지만
너무
울지는 마
내 목소리가
안 들리게 되니까
슬퍼해도 되지만
얼굴은 들어
당신에겐 내가
안 보이지만
내겐
당신의 모습이 보이니까
슬퍼해도 되지만
결코
혼자라고는
생각하지 마
나는 늘
당신 곁에 있으니까
산 자들이여
말하려 하기 전에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기도할 때
뒤편에서 찾아오는
소리없는 울림을 듣듯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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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날개
어디를
아무리 찾아본들
저쪽 세상에 있는
당신의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당신은
먼 곳으로 갔다 라고
모두가 말하기에
머나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든
당신을 만나고 싶어서
나는
보이지 않는 날개조차
가지려 했다
아아 그런데
당신이
이토록 가까이에 있었다니
발이 걸려
넘어졌을 때도
살아가기를
포기할 뻔했을 때도
당신이
나보다도
내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내가
알 수 없었던
슬픔이
당신이었다니
눈물이
당신으로부터의
부름이었다니
슬픔으로
모습을 바꿔
당신이 언제나
곁에
있어주었다니
-요시노 히데오吉野秀雄에 대한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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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한중일 동아시아문학포럼 참가작가 작품집『마음의 연대』에서/ 2018.10. 15. <아시아> 펴냄
* 와카마쓰 에이스케若松英輔(1968~)/ 니가타현 출생, 시인, 수필가, 평론가, 문학과 사상예술을 넘나들며 근대 일본의 정신사에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는 평론과 감정의 중층성과 정감의 깊이를 그려내는 시를 발표하고 있다. 시집『행복론幸福論』, 주요 작품『예수전』』『고바야시 히데오 아름다운 꽃』『영혼에 접하다, 대지진과 살아있는 사자』등, 니시와키 준자부로 학술상 · 시가문학관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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