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트로스
샤를 보들레르(C. Baudelaire / 1821-1867, 46세)
자주 선원들은 심심풀이로 붙잡는다
거대한 바다새인 알바트로스를
아득한 심연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배를
태평스레 뒤따르는 길동무를.
선원들이 갑판 위에 내려놓자마자
창공의 왕자는 서툴고 창피해하며
그 크고 하얀 날개를 배의 노처럼
가련하게 질질 끌고 다닌다.
날개 달린 이 여행객은 얼마나 어색하고 무기력한가!
조금 전까지도 멋있던 그는 얼마나 우습고 추해 보이는지
선원 하나가 담뱃대로 그의 부리를 성가시게 하고
절뚝거리며 다른 이는 더 이상 날지 못하는 불구자를 흉내내는구나!
시인은 폭풍우를 넘나들고 사수들을 비웃는
이 구름 속의 왕자와 비슷하다.
야유 속에 지상에 유배당하니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힘겹게 하는구나.
-전문/ C. Baudelaire _ 번역 이건수 -
▶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_ 윤리에 대하여(발췌)_ 오민석
"구름 속의 왕자"인 시인이 윤리 너머의 윤리를 꿈꿀 때 규범 중심의 사회는 저주의 화살을 퍼붓는다. 시인이 "구름 속"에서 유토피아를 꿈꿀 때, 규범은 동일성의 원리로 구성원들을 통합하고 현재를 재생산하려 한다. 규범 사회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알바트로스"는 포획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구름 위에서 그토록 "멋있던" 시인은 현실 속에서 "어색하고 무기력한" 존재가 된다. 보들레르는 '저주받은' 시인답게 지상에 내려와 온갖 멸시와 비웃음 속에서 "악의 꽃"을 피웠다. 그러나 그가 한 것은 악의 '선동'이 아니라 규범 사회가 감추고 있는 악을 '까발리는' 것이었다. 보들레르는 스스로 악의 몸이 되어 내부의 악마성을 드러냈고, 19세기 유럽사회가 감추고 있는 '악의 심연'을 끄집어냈다.(p.19~21.)
* 이 글의 제목("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은 롤랑 바르트(R. Barthes)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그는 『사랑의 단상』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의 고통이 내 밖에서 이루어지는 한, 그것은 나를 취소시키는 거나 다름없다." 내가 "그 사람"을 아파하지 않을 때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자크 데리다 J. Derrida) 이런 점에서 문학은 상처받은 타자의 얼굴, "그의 고통" 앞에서 무너지고 상처받는 언어이다. 문학의 언어는 가장 내면적인 '나'를 이야기할 때도 이미 타자를 향해 있다. 시의 언어는 어두운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할 때조차 이미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상처와 무너짐은 외적 현실뿐 아니라 내면의 싸움에서도 빈번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의 외부는 세상의 내부이며, 세상의 외부는 나의 내부이다. 문학은 나의 내부에서 시작되지만 늘 세계 즉 타자의 근접성을 의식한다.(p.p. 2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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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표현』2018-5월호 <권두시론_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에서
* 오민석/ 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 1993년 《동아일보》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시집 『그리운 명륜여인숙』외, 문학이론서 『정치적 비평의 미래를 위하여』외, 시 해설서 『아침 시: 나를 깨우는 매일 5분』외, 평전 『송해 평전: 나는 딴따라다』외, 번역서 바스코 포파 시집 『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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