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김기림(1908~미상)
나의 소년 시절은 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江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레 함북 자주 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江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전문2)
▶김기림, 1939년, 시의 미래, 미래의 시1)(발췌)_현순영/ 문학평론가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 비평가이자 시인 김기림은 시의 새로움을 논하며 새로운 시를 보여주려 했다. 이 글에서는 그가 '재래의 시'를, '시에 대한 오래된 관념을 부정하고 극복하며 '시의 미래'를, '미래의 시'를 꿈꾸었던 모습을 스케치해 보려고 한다.
김기림의 「길」에서부터 출발하자. (p. 151)
김기림의 「길」은 흔히 시로 읽히지만3) 『조광』 1936년 3월호에 수필로 처음 발표됐고 김기림의 유일한 수필집 『바다와 육체』(평범사, 1948)에도 실렸다.4) 김기림은 「길」을 시가 아니라 수필이라 했다. 이 사실은 그가 '재래의 시', '시에 대한 오래된 관념'을 부정하고 극복하며 '시의 미래', '미래의 시'를 에둘러 제시했던 하나의 예로 여겨져 흥미롭다.
김기림은 시가 어떤 것이라 여겼기에,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시로 보아도 무방하고 시임이 분명해 보이는 「길」을 수필이라고 했을까? 김기림이 생각한 시란 어떤 것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그의 방대한 시론의 내용을 요약하고 설명하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그의 시의식의 원형, 핵심을 조명하는 방식을 취하기로 한다. (p. 152~153)
1) 이 글은 『수필 오디세이』 5호(2021년 여름호)의 '예술과 통섭' 연재 코너에 발표한 「그 모더니스트의 시심詩心과 수필심隨筆心-김기림의 「길」」을 '수필오디세이사'의 허락을 받아 수정-보완한 것임을 밝힌다.
2) 김학동 김세환 편, 『김기림 전집』 (5), 1988, 195면에서 인용.
3) 인터넷에서 김기림의 「길」을 검색해 보면 알 수 있다.
4) 김학동 · 김세환 편, 앞의 책, 195 · 438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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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의 첫 시집은 『기상도』(창문사, 1936)이고 두 번째 시집은 『태양의 풍속』(학예사, 1939)이다. 그런데 김기림은 『태양의 풍속』에 실은 시편들을 『기상도』보다 먼저 썼다.5) 김기림의 시 의식의 원형을 추정하기에는 첫 번째 시집인 『기상도』보다 두 번째 시집인 『태양의 풍속』이 더 적절하고 그 서문인 「어떤 친한 '시의 벗'에게」는 그 추정의 실마리로 삼을 만하다.
「어떤 친한 '시의 벗'에게」에서 김기림은 '어떤 친한 시의 벗'에게 자신의 시집 『태양의 풍속』으로써 "상봉相逢이나 귀의歸依나 원만圓滿이나 사사師事나 타협妥協의 미덕美德"을 권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또 동양적東洋的 적멸寂滅", 무절제無節制한 감상感傷의 배설排泄", "탄식嘆息", "비밀秘密"과 "결별訣別"해야 한다고, 그것들을 "비만肥滿하고 노둔魯鈍한 오후午後의 예의禮儀"라고 했다. 그는 시에서 "까닭 모르는 울음소리", "과거過去에의 구원할 수 없는 애착愛着과 정돈停頓", 음침한 밤의 미혹迷惑과 현훈眩暈"을 물리치고 "놀라운 오전午前의 생리生理", "건장한 아츰의 체격體格", "어족魚族과 같이 신선新鮮하고 기旗빨과 같이 활발活潑하고 표범과 같이 건강建康한 태양太陽의 풍속風俗"을 배우자고 했다. 낡은 서정抒情이나 감상感傷 말고 문명에 대한 건강한 감수성을 시에 담자는 말이었다. 나아가 김기림은 자신도 완전히 벗어 버리지는 못했지만 "운문韻文"이라는 "예복禮服"은 너무 낡았다고, "우리들의 의상衣裳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p. 153-154)
5) 김기림은 『태양의 풍속』(학예사, 1939)의 서문인 「어떤 친한 '시의 벗'에게」에 "이 책은 1930년 가을로부터 1934년 가을까지의 동안 나의 총망한 숙박부宿泊簿에 불과하다'라고 썼다. 이 문장을 통해 그가 1930년 가을로부터 1934년 가을까지 쓴 시들을 『태양의 풍속』 에 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상도』(창문사, 1936)는 여러 시편을 모아 엮은 시집이 아니라 한 가지 주제 의식을 가지고 1935년부터 1936년까지 『중앙』과 『삼천리』에 발표한 장시長詩를 시집으로 발간한 것이다. 김학동 김세환 편, 『김기림 전집』 (1), 심설당, 1988, 382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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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친한 '시의 벗'에게」에 의하면, 김기림은 문명에 대한 건강한 감수성을 운(韻文이 아닌 주지(主知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새로운 시', 즉 '시'라고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길」은 그런 '새로운 시', '시'가 아니었다. 「길」에는 '나'가 어머니를 여의고 첫사랑을 잃은 뒤 앓은 길고 긴 좌절감과 안타까움, 외로움, 하릴없는 기다림의 슬픔이 표현되어 있다. 김기림의 기준으로는 "감상感傷의 배설排泄"이라 할 만한 서술이 「길」에는 일관되게 이루어진다. 게다가 「길」은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라는 문장으로, 낯설지 않은 서정으로 마무리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과거형 서술 어미, 조사, 어휘 등의 반복으로 운율이 생성되어 「길」은 운문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김기림에게 「길」은 시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김기림은 「길」을 "오후午後의 예의禮儀"를 담은 시라고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벗어나려는 대상, 지점으로 회귀할 수 없었을 것이므로, 그래서 김기림은 「길」을 수필이라고 했다. (p. 154~155)
김기림이 생각했던 수필은 어떤 것인가? 김기림의 「수필을 위하여」에 수필에 관한 그의 생각이 잘 담겨 있다. 김기림은 이 글을 1933년 9월 『신동아』에 발표했는데 무려 15년 뒤인 1948년에 수필집 『바다와 육체』의 서문에 덧붙여 실었다. 1933년에 쓴 글을 1948년의 수필짐에 실은 것을 보면 김기림도 그 글에 수필에 관한 생각을 만족스럽게 피력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수필을 위하여」에서 김기림은 수필의 본질로 "무시된 어떤 종류의 활동"을 위한 "넓은 천지"가 "허락"되어 있다는 점, 스타일(style)에 그 매력이 있다는 점을 들었다. 특히 그는 스타일의 매력을 강조했다. 그에 의하면, 스타일이란 '어떻게 보며, 어떻게 말하는가(어떤 문장으로, 어떤 언어로 말하는가)'이다.
전위적 모더니스트 김기림에게 "감정의 표현"(또는 '감상의 배설')은 '무시된 활동'이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이었기에 때로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 때 그는 그 감정을 시의 스타일과는 다른 스타일로 표현했고 그것을 "넓은 천지", 즉 수필의 영역에 두었던 것 같다.6) 길이 수필이 된 사정도 그러하지 않을까. (p. 155~156)
6) 물론 김기림이 수필을 시에 담지 못하는 감상과 감정을 표현하거나 해소하는 장르로만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는 "넓은 천지"라는 말로써 수필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면 아무 것도 주지 못하는 한 편의 소설을 읽은 것보다는 오히려 함부로 쓰여진 느낌을 주는 한 편의 수필은 인생에 대하여 문명에 대하여 어떻게 많은 것을 말하는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중략···) 향기 높은 '유머'와 보석과 같이 빛나는 '윗트'와 대리석大理石같이 찬 이성과 아름다운 논리와 문명과 인생에 대한 찌르는 듯한 풍자와 '아니러니'와 '파라독수'와 그러한 것들이 짜내는 수필의 독특한 맛은 우리 문학의 의미의 처녀지가 아닐까 한다.// 앞으로 있을 수필은 이 위에 다분의 근대성을 섭취하여 종횡무진한 시대적 총아가 되지나 않을까." 김기림, 「수필을 위하여」, 『바다와 육체』, 평범사, 1948. 김학동 · 김세환 편, 『김기림 전집』(5), 심설당, 1988, 170~171면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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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기림은 문명에 대한 건강한 감수성을 주지적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당위를 역설力說하는 것으로 시의 미래에 대한, 미래의 시에 대한 사유와 발언을 끝낸 것은 아니다. 암울한 시대 인간에 대한 문명의 배반과 폭력을 경험하며 그는 문명에 대한 건강한 감수성의 표현을 계속 운운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다시 「어떤 친한 '시의 벗'에게」를 보자. 그는 벗에게 '오전의 생리', '아침의 체격', '태양의 풍속'을 지향한 자신의 시집을 벗이 사랑해 주기를 바라지만 그 사랑이 영원할까 봐 두렵다고, 벗이 자신의 시집을 두고두고 사랑하는 사이에 벗의 정신이 정체停滯될까 두렵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김기림의 말은 중요하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이미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다. 『태양의 풍속』은 1939년에 발행되었다. 김기림은 당시 '문명에 대한 건강한 감수성'이라는 것에 회의懷疑하며 문명 비판의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가 그즈음, 1939년 10월, 『인문평론』(창간호)에 발표한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를 통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p. 156~157)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에는 김기림이 구축한 모더니즘론의 핵심이 정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김기림은 "신시新詩의 발전은 문명에 대한 태도의 발전'이라는 전제 아래, 조선 신시의 흐름을 약술했다. 그중 1930년대 모더니즘에 관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등장한 모더니즘은 로맨티시즘과 세기말 문학의 말류인 센티멘털 로맨티시즘을 부정하는 동시에 경향 문학의 편내용주의編內容主義를 부정했다. 즉 모더니즘은 센테멘털리즘에 대해서는 내용이 진부하고 형식이 고루하다고 공격했고 편내용주의에 대해서는 내용이 관념적이고 [言語]의 가치를 소홀히 한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모더니즘은 1930년대 중반에 위기를 맞았다. 그 위기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모더니즘 내부의 것으로서 모더니즘의 말류가 말[言語]을 말초화함으로써 말[言語]을 중시하는 모더니즘의 태도를 타락시켜 간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모더니즘 외부의 것으로서 모더니즘이 명랑한 전망 아래 감수하던 문명이 점점 심각하게 어두워지고 이지러져 간다는 것이었다. 시단의 과제는 분명해졌다. 시단은 시를 말초적 기교주의에서 끌어내야 했다. 그리고 문명을 감수하는 것에서 비판하는 것으로 태도를 바꾸어야 했다. 그 과제는 우선 말[言語]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하여 사회성과 역사성을 형상화하는 일이었다. 즉 사회성과 역사성에 의해 말[言語]의 함축을 깊어지게 하고 넓어지게 하고 다양하게 함으로써 정서의 진동을 더 강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전대前代의 경향파와 모더니즘을 종합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단은 그러한 과제를 수행하지 않았으며 수행하지 못했다. 시단은 그 과제를 수행하는 데에 태만했으며 현실의 악화와 문명의 방증은 그러한 과제의 수행을 불가능하게 했다. 그에 따라 1930년대의 시단은 혼미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이상은 가장 우수한 최후의 모더니스트였으며 모더니즘의 초극이라는 심각한 운명을 한 몸에 구현한 비극의 담당자였다. (p. 157~158)
김기림은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에서 1930년대 모더니즘의 역사적 과제 해결을 불가능하게 했던 장애들에 관해 말했다. 그러나 그는 궁극적으로 1930년대 모더니즘의 좌절에 관해 말한 것이 아니라 1930년대 중반 모더니즘에 부여되었던 역사적 과제가 여전히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으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시 모더니즘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새로운 진로는 발견되어야 하겠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길이던지 간에 '모더니즘'을 쉽사리 잊어버림으로써 될 일은 결코 아니다. 무슨 의미로던지 모더니즘으로부터의 발전이 아니면 아니 된다."7)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와 『태양의 풍속』의 서문 「어느 친한 '시의 벗'에게」를 근거로 하여, 김기림은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인 1939년경 '문명의 부정적 이면에 대한 비판', '말초화된 말[言語]에 대한 성찰'을 모더니즘 시의 새로운 기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시의 미래, 미래의 시를 꾸준히 고민하던 김기림은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이 사실은 지금, 여기서 '미래의 서정'을 모색하고 지향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p. 158~159-終)
7) 김기림,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 『인문평론』, 1939. 10. 8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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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시학회 『미래 서정』(제11호)/ 2022. 12. 31. <서정시학> 펴냄
* 현순영/ 2013년 『서정시학』 평론 부문 신인상 수상, 저서『구인회의 안과 밖』『응시와 열림의 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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