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에 내리는 비
조가경
지워진 그림자 위를 누가 걸어가고 있다
햇살은 뜨거워서 나는 작아지고
싹이 트고 있는지도 모르는 나무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고 있다
향수 가득한 봄을 데리고 온 여자
집이 있던 자리에서 쑥을 뜯는 그 여자
나무가 파라솔 그늘이기를 바라지만
나무는 아직 앙상하다
파릇해지려고 땀으로 젖은 나무 아래
여기가 테라스일 거라고 다리 꼬고 앉아도 보지만
잎사귀 같은 가족사진 어디에도 자신은 없다
제사상에도 이름 올리지 못하는 세 번째 여자가
키우던 진돗개 목덜미를 어루만지다가
민들레 꽃씨로 부풀어 오른다
해도 구름도 가까워서 자주 손 뻗어 올리던
푸른 기와 사이로 흘러든 빗물은
주인도 집도 무너진 자리에서
저벅저벅 저 혼자
발자국 소리에 잠기고 있다
-전문(p. 1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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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시학회 『미래 서정』(제11호)/ 2022. 12. 31. <서정시학> 펴냄
* 조가경/ 2021년 『서정시학』 신인상 수상, 시집 『달리는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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