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기거북 주홍글씨
이수국
마다가스카르 북부에 살고 있는 쟁기거북
황금빛 등껍질 위로 육각형 패턴이 겹을 이룬
긴 시간 진화된 아름다운 무늬는
고급 승용차 한 대 값으로 밀매되고 있다
지구상에 멸종되어 가는 거북을 살리기 위해
환경단체엔선 등판에 드릴로 일련번호를 새겼다
종 얼굴에 새겨진 奴라는 낙인처럼 무늬 위에 덧씌운 숫자
거북에겐 어느 것이 더 끔찍할까
뾰족한 못이 등판을 박음질할 때
생애 처음 듣는 진동음은 기억의 한쪽에 공포로 박힌다
아름답다는 이유로 드릴이 새긴 죽어서도 뗄 수 없는 검은 숫자들
31, 51, 46, 25, 67······
저 불온한 족쇄는 언제까지 번식할까
하나의 개채가 사라졌다 다시 만들어지기까지 500만 년이 넘게 걸린다는데
신이 시계를 반대방향으로 돌려놓는다면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카멜레온, 브라운팩맨, 이구아나, 레오파드게코······
인조잔디를 깔고 플라스틱 나무를 세우고 도심 속을 걸으면서도 SNS에 사진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는 종種은,
쟁기거북걸음으로
지금 어딜 향해 걸어가고 있을까
-전문(p. 105-106)
----------------------------------
* 서정시학회 『미래 서정』(제11호)/ 2022. 12. 31. <서정시학> 펴냄
* 이수국/ 2020년 『서정시학』 신인상 수상
'사화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빛 환한 곳/ 고은유 (0) | 2023.07.11 |
---|---|
현순영_김기림, 1939년, 시의 미래, 미래의 시(전문)/ 길 : 김기림 (0) | 2023.07.10 |
구룡동 641번지 종민이네 들깨밭/ 이명열 (0) | 2023.07.10 |
고월/ 박금성 (0) | 2023.07.10 |
소주/ 손지안 (0) | 2023.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