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쟁기거북 주홍글씨/ 이수국

검지 정숙자 2023. 7. 10. 01:06

 

    쟁기거북 주홍글씨

 

    이수국

 

 

  마다가스카르 북부에 살고 있는 쟁기거북

  황금빛 등껍질 위로 육각형 패턴이 겹을 이룬

  긴 시간 진화된 아름다운 무늬는

  고급 승용차 한 대 값으로 밀매되고 있다

 

  지구상에 멸종되어 가는 거북을 살리기 위해

  환경단체엔선 등판에 드릴로 일련번호를 새겼다

 

  종 얼굴에 새겨진 奴라는 낙인처럼 무늬 위에 덧씌운 숫자

  거북에겐 어느 것이 더 끔찍할까

 

  뾰족한 못이 등판을 박음질할 때

  생애 처음 듣는 진동음은 기억의 한쪽에 공포로 박힌다

 

  아름답다는 이유로 드릴이 새긴 죽어서도 뗄 수 없는 검은 숫자들

  31, 51, 46, 25, 67······

  저 불온한 족쇄는 언제까지 번식할까

 

  하나의 개채가 사라졌다 다시 만들어지기까지 500만 년이 넘게 걸린다는데

  신이 시계를 반대방향으로 돌려놓는다면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카멜레온, 브라운팩맨, 이구아나, 레오파드게코······

  인조잔디를 깔고 플라스틱 나무를 세우고 도심 속을 걸으면서도 SNS에 사진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는 종은,

 

  쟁기거북걸음으로

  지금 어딜 향해 걸어가고 있을까

    -전문(p. 10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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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시학회 『미래 서정』(제11호)/ 2022. 12. 31. <서정시학> 펴냄

  * 이수국/ 2020 『서정시학』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