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쓰는 밤/ 정숙자 편지 쓰는 밤 정숙자 그리운 이에게 편지 쓰는 밤은 행복하다오 티끌어린 생각을 떠나 잉크에 달빛을 곱게 섞으며 정다운 이름 부르노라면 누구도 범하지 못하는 행복 두견이사 글자가 없어 저리 소리로 외는가 보아 목이 터져라 울면서라도 부를 이름 있으면 찬란한 생명 이 땅이 죄업..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8.03
포플러/ 정숙자 포플러 정숙자 나 오늘처럼 외로운 날엔 나보다 더 외로운 그댈, 생각해 바람 불면 우수수 잎새 잃어도 눈물 보이잖고 서 있는 그대 하늘은 아마도 그 외롬을 가장 사랑하는 까닭이겠지 그래서 가까이 만나시려고 그리 높다라이 키우셨겠지 외로운 마음이사 닦고 닦아도 외로움밖에 아니..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7.31
우정/ 정숙자 우 정 정숙자 진실한 우정은 그대여 햇빛처럼 눈부시지도 소나기처럼 지나가지도 않는답니다 진실한 우정은 그대여 부드럽고 은은하게 우리 마음에 머무르지요 만남이 잦거나 뜸하거나 생활이 성하거나 쇠하거나 어떤 조건도 초월하면서 뿐일까요 뛸 듯이 반갑게 만나더라도 화려한 언..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7.31
약한 생명들이/ 정숙자 약한 생명들이 정숙자 이렇게도 겨울이 어둡고 쓸쓸한 까닭은 이슬, 꽃, 나비…… 이렇게 작은 생명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랍니다 그들이 우리 곁에 소리 없이 날며 반짝거릴 때 온 누리는 매일매일 명절처럼 풍성했지요 옥수수밭엔 풍뎅이가, 나뭇가지엔 거미줄이, 언덕에는 제비꽃이, 이..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7.28
가을길/ 정숙자 가을 길 정숙자 추락은 서글프다 마악 떨어진 낙엽 위로 자동차가 굴러간다 아야아 ― 하늘이 자꾸 파래진다. ------------- * 시집 『이 화려한 침묵』에서/ 1993. 4. 26. <명문당> 발행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7.28
오늘을 넘으며/ 정숙자 오늘을 넘으며 정숙자 내 서러워도 울 수 없는 건 더 서러운 내일이 올 것 같기에 기대어 잠들 누구도 없이 기대어 깨어날 누구도 없이 혼자서 뜨고 지는 별과도 같이 밤새 깜박깜박 견디는 슬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하늘만 믿고 믿으며 걷는 다리 위 기적처럼 찬란한 날이 온다면 참지 ..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7.28
오선/ 정숙자 오 선 정숙자 기쁨도 슬픔도 나는 끝까지 지니지 못했어 언제나 도중에서 노래와 바꾸었지. ------------- * 시집 『이 화려한 침묵』에서/ 1993. 4. 26. <명문당> 발행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7.28
쓸쓸해질 때/ 정숙자 쓸쓸해질 때 정숙자 명도 높은 말씨보다는 담담한 진실 지닌 한 사람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문득문득 삶이 괴로워질 때 그래서 갈꽃처럼 쓸쓸해질 때 머언 곳으로 머언 곳으로 함께 날 수 있는 그러한 사람 덜컹대는 바람에 눈이 섞일 때 유리문에 달 떴을 때 게다가 희망이 매를 맞을 때 ..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7.22
침묵과도 같은/ 정숙자 침묵과도 같은 정숙자 어느 하루 아름다운 스토리를 위하여 우리의 삶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하루 슬픈 역사를 추억하기 위하여 우리의 삶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삶의 종국이 희극이거나 비극이거나 그런 건 너무나도 환상적입니다 우리가 오늘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까닭..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7.22
사랑하므로/ 정숙자 사랑하므로 정숙자 사랑한 만큼 사랑 받기를 원하지 마오 더 많이이거나 꼭 그 만큼이거나 그 절반일지라도 사랑의 불행은 받으려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어니 사랑하거든 다만 사랑하므로 사랑하오 사랑은 거래가 아니니 만큼. ------------- * 시집 『이 화려한 침묵』에서/ 1993. 4. 26. <명..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