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강의실/ 이재훈 꿈꾸는 강의실 이재훈 햇살이 창가에 와서 눕는다 우리는 저 찬란한 햇살을 의지하지 못한다 강의실은 학생들로 빼곡하다 사육당하는, 사육당하고 싶은 청년들 먼 대양의 꿈도 격정적인 연애의 꿈도 잊었다 따닥따닥 볼펜이 책상을 찧는 소리 얼굴 모두에 수상한 간판이 붙어 있다 강사는 얘기한다 .. 잡지에서 읽은 시 2011.06.10
난해시 사랑/ 복효근 난해시 사랑 복효근 난 난해시가 좋다 난해시는 쉬워서 좋다 처음만 읽어도 된다 처음은 건너뛰고 중간만 읽어도 한 구절만 읽어도 끝부분만 읽어도 된다 똑같이 난해하니까 느낌도 같으니까 난 난해시가 좋다 난해시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 사람도 나하고 같이 느낄 테니까 인상적인 한 구.. 잡지에서 읽은 시 2011.06.09
君子三樂* / 우원호 君子三樂* 우원호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양친이 다 살아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왕도王道를 바랐던 이천 년 전.. 잡지에서 읽은 시 2011.06.09
올해의 가장 재미없는 문학상/ 김성규 올해의 가장 재미없는 문학상 김성규 첫 문장은 무조건 재미없어야 한다 제목은 흥미를 떨어뜨릴 것 중간은 지루해서 책장을 넘기다 졸도하도록 만들 것 갈수록 반복되는 이야기가 나올 것 결말, 마지막 문장은 첫 문장과 같을 것 표지는 화려하게 꾸미고 내용은 알 수 없는 말을 섞어놓을 것 평론은 .. 잡지에서 읽은 시 2011.06.03
초록 봄비/ 나태주 초록 봄비 나태주 나 어려서는 정말로 초록 봄비가 내렸다 봄비가 내리면 새잎이 나고 꽃들이 새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새로 잎이 나는 나무며 풀들은 마치 운동회 날 뜀박질하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같았고 새로 피어나는 꽃들은 마치 장마당에 모여 북적대는 장꾼들 같았다 아이들도 비.. 잡지에서 읽은 시 2011.05.25
멧팔랑나비/ 문효치 멧팔랑나비 문효치 4월의 해 한 점 떨어져 내려온다 떨어진 자리는 늘 아프다 아픔 한 점 팔랑팔랑 날다가 머리, 창공에 부딪는다 눈에 번쩍 번개 드는 날 떡갈나무 어린 잎 밑에 알 하나 낳고 또다시 팔랑팔랑 날다가 가뭇없이 가버리는 그대 *『현대시학』2011-5월호 <이달의 작품>에서 ---------------.. 잡지에서 읽은 시 2011.05.23
리코더/ 신용목 리코더 신용목 흐르는 거리, 공기의 구멍을 세는 빗방울들이 하나씩 손가락을 부러 뜨린다. 청바지를 입은 몸에서, 목걸이를 걸고 있는 목에서. 잘려나간 얼굴들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하나씩 아픈 약속을 깨문다. 흐린 바닥에서 번지며, 미안해, 별 하나를 지웠어. -놓쳐버린 종이컵에서.. 잡지에서 읽은 시 2011.05.17
엘리베이터 엘리게이터/ 강희안 엘리베이터 엘리게이터 강희안 그가 주말마다 엘리베이터 갈아타면서 붉은 악어백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줄줄 달력의 버튼 누르며 수평 하강을 반복하는 동안 한 장씩 드르륵 뜯겨져 나가는 스프링 바퀴의 궤적을 염탐할 것이다 늪지의 낌새가 수상해지는 사이 늙은 여름이 불쑥 끼어들기 시작했다 .. 잡지에서 읽은 시 2011.05.17
지지 않는 꽃/ 전순영 지지 않는 꽃 전순영 왜군 10만 여명이 진주성을 쳐들어오자 군인과 시민은 한 덩이 바위 가 되어 가로 막았지만 다 죽고 말았다 논개는 속으로 뼈를 갈았다 갈고 또 갈았다 날마다 뼈를 갈 때 그 살 내음이 몸 밖으로 水蜜桃처럼 단내가 흘러 나왔다 왜장 게야무라가 논 개 곁으로 다가오자 논개는 사 .. 잡지에서 읽은 시 2011.05.17
죽음이 거치적거린다/ 정병근 죽음이 거치적거린다 정병근 보험 광고를 보고 있으면 멀쩡하게 살아있는 몸이 미안하다 사는 게 더럽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다 요행스럽게 다치기, 행복한 암 걸리기, 그럴 줄 알고 죽기 가 과연 말이나 되는 말이란 말인가 보험을 들지 않으면 당신은 반드시 불행하리라 가면 그만이다 싶다가도 .. 잡지에서 읽은 시 2011.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