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봄비
나태주
나 어려서는 정말로 초록 봄비가 내렸다
봄비가 내리면 새잎이 나고 꽃들이 새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새로 잎이 나는 나무며 풀들은 마치 운동회 날 뜀박질하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같았고
새로 피어나는 꽃들은 마치 장마당에 모여 북적대는 장꾼들 같았다
아이들도 비를 맞으면 키가 큰다고 좋아했다
요즘도 초록 봄비는 내린다
그러나 그 초록 봄비는 화살촉 같은 날카로운 혓바닥을 숨긴 초록 봄
비다
산성비이고 방사능비라는 이름을 가졌다
어른들은 절대로 밖에 나가서 비를 맞으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오히려 아이들은 창 안에서 맨몸으로 초록 봄비를 맞고 있을 나무며 플
들을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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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학』2011-5월호 <신작특집>에서
* 나태주/ 충남 서천 출생,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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