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초록 봄비/ 나태주

검지 정숙자 2011. 5. 25. 14:54

 

 

   초록 봄비


    나태주



  나 어려서는 정말로 초록 봄비가 내렸다

  봄비가 내리면 새잎이 나고 꽃들이 새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새로 잎이 나는 나무며 풀들은 마치 운동회 날 뜀박질하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같았고

  새로 피어나는 꽃들은 마치 장마당에 모여 북적대는 장꾼들 같았다

  아이들도 비를 맞으면 키가 큰다고 좋아했다


  요즘도 초록 봄비는 내린다

  그러나 그 초록 봄비는 화살촉 같은 날카로운 혓바닥을 숨긴 초록 봄

비다

  산성비이고 방사능비라는 이름을 가졌다

  어른들은 절대로 밖에 나가서 비를 맞으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오히려 아이들은 창 안에서 맨몸으로 초록 봄비를 맞고 있을 나무며 플

들을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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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학』2011-5월호 <신작특집>에서

  * 나태주/ 충남 서천 출생,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