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가장 재미없는 문학상
김성규
첫 문장은 무조건 재미없어야 한다
제목은 흥미를 떨어뜨릴 것
중간은 지루해서 책장을 넘기다 졸도하도록 만들 것
갈수록 반복되는 이야기가 나올 것
결말, 마지막 문장은 첫 문장과 같을 것
표지는 화려하게 꾸미고
내용은 알 수 없는 말을 섞어놓을 것
평론은 무조건 새로운 작품이라고 극찬할 것
광고는 우주에서 처음 탄생한 문학이라는 평론가의 말을 인용해
반복적으로 독자들을 실망시킬 것
암시장에는 철 지난 책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도서 유통업자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헌책을 복제해 암시장에 팔기 시작했다
서점에는 한 줄의 문장도 넣지 않는 파격으로
올해의 가장 재미없는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사진이 가판대에 걸려있었다
상금과 함께 그는 예술의 고통에 대해
널어놓은 푸념과 사생활로 신문을 장식했다
독재자와 함께 시를 낭송하는 장면이 중계되고
더 이상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을 때
그들은 예술을 되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수없이 팔려나간 수상자의 책들이
헌책방에 넘치고 제자들은 그를 칭송하느라
지쳐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다
헌책방만을 찾아다니던 독자들은
통제와 규칙만이 예술을 부흥시킬 수 있다던
수상자의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의미로 가득 찬 여백에 끄적이기 시작했다
독재자와 어리석은 아첨꾼의 이야기를,
첫 문장은 무조건 재미없어야 한다
* <리토피아> 2011-여름호 '신작시'에서
*김성규/ 충북 옥천 출생,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난해시 사랑/ 복효근 (0) | 2011.06.09 |
---|---|
君子三樂* / 우원호 (0) | 2011.06.09 |
초록 봄비/ 나태주 (0) | 2011.05.25 |
멧팔랑나비/ 문효치 (0) | 2011.05.23 |
리코더/ 신용목 (0) | 2011.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