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리코더/ 신용목

검지 정숙자 2011. 5. 17. 02:10

   

    리코더


    신용목



흐르는 거리, 공기의 구멍을 세는 빗방울들이 하나씩 손가락을 부러

뜨린다.

청바지를 입은 몸에서,

목걸이를 걸고 있는 목에서.


잘려나간 얼굴들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하나씩 아픈 약속을 깨문다.

흐린 바닥에서 번지며,

미안해, 별


하나를

지웠어. -놓쳐버린 종이컵에서

쏟아진 구름이.


흐르는 거리, 공기의 몸을 더듬는 손가락들이 조금씩 옷자락을 타고

오른다.

청바지에서 빠진 푸른 물이,

목걸이가 만든 둥근 올가미가.


반짝이는 구멍으로 깊어지던

밤하늘 검은

노래 하나를. -그리고

더는 꼽을 수 없는 손바닥 아래에서

구겨진 종이컵.


구겨진 구름아. 바닥에서 뒹구는 머리가 질척이는 얼굴을 풀어놓을

때,


흐르는 거리, 한 다발씩 찢긴 악보로 피는 어둠이 향수를 파는 상점 네온

위에 떨고 있다.

부러진 손가락들이 짚고 있는 별자리처럼

목 아래 가지런히 단추를 달고.


나는 모든 노래의 끝에 채워져 있다,

얼굴을 잃어버린 마네킹처럼,



*『애지』2011-여름호 <애지의 시인들>에서

* 신용목/ 경남 거창 출생, 2002년『작가세계』로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록 봄비/ 나태주  (0) 2011.05.25
멧팔랑나비/ 문효치  (0) 2011.05.23
엘리베이터 엘리게이터/ 강희안   (0) 2011.05.17
지지 않는 꽃/ 전순영  (0) 2011.05.17
죽음이 거치적거린다/ 정병근  (0) 2011.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