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어, 바람을 필사하다/ 송종규 북어, 바람을 필사하다 송종규 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가난한 애인들이 종이컵을 감싸 안는 겨울밤에 성에 낀 창가에 별빛이 달려와 수북수북 쌓이는 집요한 밤에 넘기지 못한 페이지처럼 낯선 발자국들이 해안선 쪽으로 달려갈 때 내가 나는 一群의 바다는 공중 높이 펄럭이며 ..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2.09
비가역 회로/ 정채원 비가역 회로 정채원 터진 풍선에 볼을 비비랴 금간 꽃병을 안고 잠든들 꿈만 젖을 뿐 깨진 항아리는 깨진 항아리, 세상에는 뚜뚜팡팡크크가 존재한다 신이 존재한다 수맥도 자석도 나는 믿지 못하겠다 차라리 너의 모자를 믿는다 모자는 수 시로 변하는 네 눈빛을 가려주는 것 모..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2.09
법문(法門)/ 홍사성 법문(法門) 홍사성 아침 댓바람에 평소 듣기 어려운 법문을 들었다 야, 이 개새끼야! 니깐 놈이 그렇게 잘났어 쌍놈의 새끼야 나하고 맞짱 한번 뜨자 듣다보니 어쩌면 내가 어느 전생에서 개새끼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웅녀가 사람이 되려고 쑥과 마늘만 먹고 백일을 견딘..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2.09
방랑의 도시/ 이재훈 방랑의 도시 이재훈 우연히 날아온 화살에 등을 맞았다 뒤를 돌아보니 신비한 빛이 발밑으로 들이쳤다 등이 아프지는 않았다 나는 화살을 등에 꽂고 거리를 지나다녔다 겨울엔 찬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천천히 바람을 가르며 거리 위를 새겨 나간다 길의 감촉도 모른 채 떠남을 탐했다 ..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2.07
가릉빈가/ 김옥성 가릉빈가 김옥성 法音이 들려온다 빈자의 새벽을 깨우는 天界의 음악 새 울음소리에는 아직 雪山의 향기가 섰여 있다 맑은 마음의 밝은 자리가 극락인지라 천고뇌음(天鼓雷音) 새의 울음소리가 無明을 쪼아대는 창가에서 은자에겐 시방세계에 더 즐거운 음악이 없다 내가 해독하지 못한..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2.06
돌아오지 않는 것/ 황희순 돌아오지 않는 것 황희순 당신을 만지면 피가 묻어나요. 누군가 들락거린 금 간 유리창에 닿아 손 끝을 베이죠. 시간을 더듬어 당신 깊숙이 피 묻은 손을 넣다가 나는 언제 나 변질된 마음자리에 풍덩 빠져 허우적거려요. 당신은 허우적거리는 나 를 통째로 삼켜버리죠. 그럴 때마..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2.06
빙장(氷葬)/ 양수덕 빙장(氷葬) 양수덕 향기가 절박하다 불씨란 불씨 다 삼킨다 해도 피 돌지 않는 고깃덩어리가 단단하고 차가운 요람으로 돌아간다 낡은 구조물을 비추는 얼음수의 피는 더 이상 달리지 않고 낮달처럼 숨어든 그늘과 바람이 끼적이다 만 비망록은 관 속의 행진 무정란을 까던 입을 ..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1.25
[스크랩] 술래잡기 술래잡기 황희순 커튼 사이로 칼날 같은 햇살이 들어온다 세상과 통하는 길이 저랬다, 좁은 그 길을 여닫으며 칼날 같은 말과 눈빛만 오래 주고받았다 꼭꼭 커튼을 여미지만 여민 틈새로 더욱더 예리한 빛이 스며든다 칼이 들어와도 다시는 커튼을 열지 않을 거야 살을 파고드는 ..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1.11
춤/ 장요원 춤 장요원 바람의 손끝에 춤이 묶여 있다 몸을 벗어버리자 바람들이 옷으로 들어온다 옷이 한번도 해보지 못한 동작을 한다 그림자들이 바닥에서 춤을 춘다 바람이 손끝으로 줄을 밀고당기는 동안 빨래집게가 햇볕을 꽉 물고 있다 날아가지도 못하는 공중에 관절들이 가득 들어 있다 셔.. 잡지에서 읽은 시 2011.11.14
선인장 가시가 물을 길어 올리는 시간/ 강서완 선인장 가시가 물을 길어 올리는 시간 강서완 단서는 없었다 어떤 지문도 발자국도 피 한 방울의 흔적도 없이 숨을 거둔 남자는 반듯했다 책상 위에 시든 선인장 하나가 형사의 눈 속 떨림을 밀어냈 다 사건의 목격자로 선인장이 지목되었다 태평양 솔로몬 마을의 벌목 방법은 나.. 잡지에서 읽은 시 2011.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