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장경렬_사랑과 이별을 노래한...(발췌)/ 애너벨 리 : 애드거 앨런 포

검지 정숙자 2020. 4. 4. 16:41

 

 

  애너벨 리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 40세)

 

 

아주 오래고 오랜 옛날,  

    바닷가 한 왕국에

당신도 알지 모를 소녀가 살았다오,

    애너벨 리라는 이름의 소녀가.

이 소녀가 살아가며 가슴에 품고 있던 생각은

    나를 사랑하고 내게 사랑받는 일뿐이었다오.

 

그녀도 아이였고 나도 아이였지만,

    이곳 바닷가 왕국에서,

우리는 사랑보다 더한 사랑으로 사랑했다오,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

천상의 날개 달린 천사들이

    그녀와 나를 부러워할 그런 사랑으로. 

 

바로 그 떄문이었소, 오래전

    이곳 바닷가 왕국에

구름에서 바람이 불어와, 한밤에

    나의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얼린 것은.

그리하여 그녀의 고귀한 집안사람들이 찾아와

    그녀를 내 곁에서 데리고 가서,

무덤 속에 그녀를 가두었다오,

    이곳 바닷가 왕국의 무덤 속에.

 

우리의 반만큼도 행복하지 않던 천상의 천사들이

    그녀와 나를 시기했던 것이오.

그렇소, 이곳 바닷가 왕국의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듯 그것이 이유였다오,

구름에서 바람이 불어와 나의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얼려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한결 더 강한 것이었소,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우리보다 한결 슬기로운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그렇기에 저 위 천상의 천사들도

    저 아래 바다 밑의 악마들도

내 영혼을 떼어놓을 수는 없다오,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영혼과.

 

달빛이 비칠 때면 나는 언제나 꿈꾼다오,

    아름다운 애너벨 리를.

그리고 별이 뜰 때면 나는 언제나 본다오,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빛나는 눈을.

그렇기에, 나는 밤새도록 누워 있다오,

    나의 삶이자 나의 신부인 내 사랑, 내 사랑 곁에,

    바닷가 그곳 무덤 속의 내 사랑 곁에,

파도가 찰싹이는 바닷가 무덤 속의 내 사랑 곁에.

   -전문-

 

 

   ▶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시와 함께/- 에드거 앨런 포와 음악적 울림이 돋보이는 그의 시편들(발췌)/ 장경렬/서울대 명예교수

  「애너벨 리」가 세상에 공개된 것은 포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의 시 가운데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이 시를 통해 우리는 이미 죽음에 이른 "애너벨 리"라는 이름의 소녀를 사랑했던 시적 화자와 마주한다. 시적 화자에 의하면, 자신과 애너벨 리 사이의 사랑은 "천상의 천사들"까지 시기할 정도로 지극한 것이었다. 또한, 그의 확신에 따르면, 애너벨 리가 때 이르게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것은 천사들이 이 같은 자신들의 사랑을 시기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운명이 무언가 초자연적인 것에 의해 좌우된다는 믿음은 "아이"의 유치한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간의 의식을 지배해 왔던 원초적인 세계 이해의 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둘 사이의 사랑이 지극했던 만큼, 시적 화자는 애너벨 리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여전히 여일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밤새도록 애너벨 리의 무덤 곁에 누워 그녀의 모습을 꿈꾸고 그녀의 눈길을 떠올린다.(p.77-78)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시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와 관련하여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있다면, 이는 "애너벨 리"의 정체일 것이다. "애너벨 리"는 물론 실존 인물이 아니다. 이로 인해, "애너벨 리"는 누군가에 대한 시적 형상화로 보지 않을 수 없는데, 무엇보다 포의 아내였던 버지니아 엘라이자 클렘(Virginia Eliza Clemm)이 그와 같은 시적 형상화의 주인공이라는 것이 문학연구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와 관련하여, 그녀는 13세의 나이에 27세의 포와 결혼했으며, 19세의 나이에 폐병을 앓기 시작하여 1847년 1월에 2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음에 유의하기 바란다. 아내의 죽음이 포에게 미친 정신적 충격이 쉽게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기에, 그는 아내의 죽음 이후 정상적으로 일상 생활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가 아내를 여의고 3년이 채 못 되는 1849년 10월 40세의 나이로 의문의 죽음에 이른 것은 추측건대 아내의 때 이른 죽음에 따른 정신적 충격 떄문이었는지도 모른다. (p. 79)  

 

   * 블로그주 : 책에 「애너벨 리」 영문본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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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청춘』2020-봄호 <영미시 산책 ⑨> 에서

   * 장경렬/ 인천 출생, 비평집 『미로에서 길 찾기』『꽃잎과 나비, 그 경계에서』등 다수, 서울대 영문과 졸업, 미국 오스틴 소재 텍사스대학교 영문과 박사학위 취득, 현재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