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상점
이도훈
내가 아는 칼의 상점이 있다.
비슷한 모양의 이파리들이 살煞을 겨눈다.
바람이 바뀔 때마다 이가 갈리고
후덥지근한 여름 습기에 녹슨다.
수천 자루의 칼들이 벌이는 전쟁터엔
칼 부딪는 소리가 대숲의 소리를 닮았다고 한다.
칼은 파릇한 소리를 띤다.
심장을 찾다가는 소리다.
낭떠러지로 푸른 원혼을 떨구는 소리
칼은 꽃이 피면 둘 중 하나는 말라 죽는다 한다.
말라죽은 칼은
스산한 회한을 풀어놓듯
서걱서걱 소리로만 산다고 한다.
온통 날이 새파란 양날의 칼
대밭은 전쟁의 승패가 갈리는 곳
전열을 가다듬은 한쪽에서 바람 몰이를 하면
휘어진 반격의 움추림이 휘청 솟아오른다.
요충지라 불리는 곳에
수천수만의 뼈가 묻혀있고
마른 바람이 서식하고 있다
대밭은 거대한 무덤
시퍼런 진열만 가득한
칼의 상점이 또 우후죽순 돋는다.
--------------
*『다층』 2019-가을호 <다층시단>에서
* 이도훈/ 2015년『시와표현』으로 등단, 시집『맑은 날을 매다』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이아2K/ 최영효 (0) | 2019.10.06 |
---|---|
문안하게 문안하게/ 박순원 (0) | 2019.10.06 |
관찰자/ 도복희 (0) | 2019.10.05 |
이슬 프로젝트-46/ 정숙자 (0) | 2019.10.05 |
지질 시간/ 김백겸 (0) | 2019.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