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칼의 상점/ 이도훈

검지 정숙자 2019. 10. 5. 00:41

 

 

    칼의 상점

 

    이도훈

 

 

  내가 아는 칼의 상점이 있다.

  비슷한 모양의 이파리들이 살을 겨눈다.

  바람이 바뀔 때마다 이가 갈리고

  후덥지근한 여름 습기에 녹슨다.

 

  수천 자루의 칼들이 벌이는 전쟁터엔

  칼 부딪는 소리가 대숲의 소리를 닮았다고 한다.

 

  칼은 파릇한 소리를 띤다.

  심장을 찾다가는 소리다.

  낭떠러지로 푸른 원혼을 떨구는 소리

  칼은 꽃이 피면 둘 중 하나는 말라 죽는다 한다.

  말라죽은 칼은

  스산한 회한을 풀어놓듯

  서걱서걱 소리로만 산다고 한다.

 

  온통 날이 새파란 양날의 칼

  대밭은 전쟁의 승패가 갈리는 곳

  전열을 가다듬은 한쪽에서 바람 몰이를 하면

  휘어진 반격의 움추림이 휘청 솟아오른다.

 

  요충지라 불리는 곳에

  수천수만의 뼈가 묻혀있고

  마른 바람이 서식하고 있다

 

  대밭은 거대한 무덤

  시퍼런 진열만 가득한

  칼의 상점이 또 우후죽순 돋는다.

 

 

   --------------

  *『다층』 2019-가을호 <다층시단>에서

  * 이도훈/ 2015년『시와표현』으로 등단, 시집『맑은 날을 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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