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를 생각하며 시를 버리다
최동호
신에 대한 강한 회의로 경건한 말씀을 전하는
성서를 휴지보다 가치가 없다고 집어 던져 버렸다는
젊은 날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을 떠올리며
나의 시를 돌이켜 생각해 본다.
나의 시는 그대 한 사람의 마음도 꿰뚫지 못하고
나의 시는 그대 한 사람의 사랑도 얻지 못하고
나의 시에 뒤늦게서야 절망에 빠진다.
나의 시는 종이 한 장 뚫지 못하고
나의 시는 볼펜에서 삐져나와 종이 위에 낙서를 그리고
어두운 수채 구덩이 속으로 사라진다.
나의 시는 누구에게도 위로가 되지 못하고
나의 시는 종이만 버리고 읽히지 않은 채 사라진다.
한때는 나도 커다란 꿈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시는 절망에 빠진 젊은 시절 나를 구해 주었고
나의 시는 떠나가는 작별의 아픔을 치유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나의 시는 시든 낙엽과 같이 되었고
버려지는 휴지처럼 바닥에 뒹굴고 있다.
나의 시는 나의 마음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나의 시를 이렇게 탓하고 있던 어느 날 밤
나의 시는 나에게 이렇게 말을 던졌다.
그러면 되었지 더 이상으로 무엇을 바라느냐.
시가 없었더라면 그렇게라도 살지 못했을 주제에
시만 탓만 하고 제대로 시를 쓰지도 못하는 사람은
이제는 시인도 아니라고 했다.
평생을 바쳐 온 나의 시를 바라보며 뒤늦게 깨닫는다.
불쌍한 나의 시여 그대는 사람을 잘못 만났구나.
이제 미련 없이 자유를 찾아가라.
불평으로 평생을 사는 어리석은 자를 떨쳐 버리고
자유를 찾아 멀리 떠나가라.
끝내 그대에게 버림받고 시로부터도 버림받은
나도 이제 시가 없는 세상을 찾아가서
아우구스티누스처럼 회개하고 마지막 남은 생을
신에게 의지하여 경건하게 기도하며 살아가려 한다.
-전문(p. 10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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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4-여름(33)호 <poem> 에서
* 최동호/ 시인, 문학평론가, 1976년 시집『황사바람』발간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공놀이하는 달마』『불꽃 비단벌레』『얼음 얼굴』『수원 남문 언덕』『제왕나비』『황금 가랑잎』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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