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채길우
얼굴만 한 꽃을 틔우고
키를 웃돌 듯 높이 자랐던
수확 앞둔 해바라기들은
가을 폭우에 택없이
쓰러져 버렸다
일으켜 세워
흙을 밟아 주어도 다시
넘어지고 마는 뿌리
얕은 꽃들은 그러나
다음 날 햇살이 비치자
고개 숙인 바닥에서조차
다시 목을 늘어뜨리고
머리를 디밀며 태양을
올려다보기 위해 힘껏
턱을 쳐들었다
좁은 잔발등이 터져
이미 들려 버렸는데도
밑에서부터 썩어 가는 잎사귀에
곱은 어깨가 전부
시들어 뭉개진 채로도
-전문(p.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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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4-여름(33)호 <poem> 에서
* 채길우/ 시인, 2013년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스스로 웃는 매미』『섬들이 놀다』『옛날 녹천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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