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이지희_시.가.마가 선정한 좋은 시/ 기껏해야 거울이거나 : 강재남

검지 정숙자 2022. 8. 28. 16:14

 

    기껏해야 거울이거나 거울의 다른 이름이거나

 

    강재남

 

 

  몽상의 숲에 목소리를 잃은  물고기가 산다는데

 

  숲은 경솔한 물방울을 모아둔다 오목하게 파이는 물고기 퇴화한 아가미를 가진 너에게 회화적인 이름을 지어준다

 

  거짓말이 고개를 든다 제 색을 펼치지 못한 유월은 허언을 앓는다

  한낮이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도 계절을 따라가다 헐거운 문장을 만나더라도

 

  잔잔한 수면을 거울이라 부르면 좋겠어 물고기에게 목소리를 주면 좋겠어 꼬리를 움직일 때마다 유순한 쉼표를 그리면 좋겠어

 

  때때로 거울에 네가 일렁이는 건 물고기에게 그리운 감정을 먹이로 던지기 때문

  몽상의 숲에 고인 거울을 깨야 할까

 

  거울의 감정은  파란 잉크와 종이비늘물고기

  모스부호로 흩어지는 말이 쉼표를 건넌다

 

  유월은 서쪽으로 가는 거야 묘연한 숲에선 거짓말이 자라거든

 

  거울의 근황이 엷어진다 거울에서 네가 보인다

  왼쪽은 왼쪽으로 그리하여 좀 더 서쪽으로 기우는 너, 너를 왜곡하는 너라는 이름의 거울

    -전문, 시집 『아무도 모르게 그늘이  자랐다』(달을 쏘다. 2021)

 

  ▣ Little Magazine시가마 선정 좋은 시_이지희

  경계란 때로 위안이다. 과거와 현재 또한 때로 공존한다. 계절과 시간이 흐르는 방향은 모호해서 현실과 잠재성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걸 시인은 간파한다. 거울을 데려오는 저 유순한 능청이라니! '멍상의 숲'에선 기울거나 틀거나, 일렁이거나 고이거나, 움직이거나 쉬거나 아무렴 괜찮다. 허상과 허언일지라도 적확히 규정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안한가. 기껏해야 나는 나이거나 나를  지나온  미래의 나이거나. ▩ (p.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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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ttle Magazine 『시 가꾸는 마을 』 2022-여름(35)호 <시가마 선정 좋은 시> 에서

  * 이지희/ <시가마>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