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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를 굽는 저녁/ 김지헌

전어를 굽는 저녁      김지헌    서쪽으로 가도 좋겠다  연탄 화덕에 전어 올리고  타닥타닥  굵은 천일염 소리 듣는 저녁이라면  고소한 전어의 살점을 나누는  들끓는 저녁이라면   횟집 야외 식탁에서 젓가락으로 바다를 헤집으며  전어를 구워 먹는 사람들  다 받아 줄 것처럼  수평선은 저만치 물러앉아 있다   세상 치욕이 몰려오듯  얼룩말 떼 파도 우레같이 달려들다 몰려나간다  돌아가는 길마저 보이지 않을 때면  바다를 찾는다던 남자  쉼 없이 밀려드는 삶의 파도 앞에서  넘어지고 피 흘ㄹ며 여기까지 왔으리라   서쪽으로 가도 좋겠다  들끓는 저녁 바다 앞  간절한 생의 마지막 문장을 위하여     -전문(p. 24-25)   ---------------* 군산시인포럼 제4집 『바다의 메일』 에..

최형심_거대 기계문명과 혁명 사이에서 꿈꾸다(부분)/ 동학매화 : 김송포

동학매화     김송포    만세운동을 하던 동학혁명기념관 앞 햇살 비추는 곳에서 농민의 외침을 들어보았나 읍 장날 만세 부를 준비를 하다가 태극기를 채소 가마니로 위장하여 남문까지 운반하여 시위에 돌입하다   만세 소리 학교 다닐 때 퍼져가거나    행진하다 총격 소리에 놀라 흐트러지거나   집합하여 시위를 이어간 소리 들어보거나   5.18 역전 바닥에 누워 있거나    물러가라는 외침과 비슷하거나   매서운 추위를 이겨낸 저항이   추위와 바람을 안고 피어난 혁명의 꽃   경기전 안에서 낙엽을 뿌리며 놀거나   농민 외침의 진격 소리 들어 보거나   대화의 첫 망울을 보고 눈앞에서 포효하자   질서에서 방해받던 사람이 화들짝 피어나   만세를 부르면 합창이 되어   얼어붙은 땅에서 올라온 매화향이 ..

사과 알기/ 최휘

사과 알기     최휘    사과야  불러도 꿈쩍 하지 않는 사과    맛있는 사과야  또 불러도  꿈쩍 하지 않는 사과   사과는 제 이름도 모르나    뽀득뽀득 씻어  사각사각 껍질을 벗겨  또각또각 네 조각으로 잘라  아삭아삭 입에 넣어 씹으면  새콤달콤 입술 사이로 즙이 흐르는 사과야   이렇게 부르니까  빨갛게 웃는 사과    -전문(p. 92) ---------------------- * 『시와문화』 2024  여름(70)호 에서 * 최휘/ 2012년 『시로여는세상』으로 등단, 시집 『야비해지거나 쓸모없어지거나』『난, 여름』, 동시집『여름 아이』

동시 2024.07.15

2월에 새로 사귄 친구들/ 김인호

2월에 새로 사귄 친구들     김인호    2월 들어 황새를 만나면서 뱁새가 보고 싶어 뱁새를 찾다가 원앙을 만났고 원앙이 동박새를 소개해 줘 동박이를 만났고 동박이를 만나러 다니다가 흑두루미 주소를 알아 찾아가 인사를 나눴고 그 집에 함께 사는 독수리까지 만났다 지난 주말에는 '지리산 사람들' 총회에 갔다가 함양 엄천강 호사비오리를 만났는데 렌즈가 작아 잘 담아주질 못했다 조만간 대형 망원렌즈를 구입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다 보내준 흑두루미 사진을 보고 아이들이 흑두루미를 보러 오겠다고 한다 도시의 아이들이 나의 친구들에게 관심을 보여주니 기쁜일이다 그렇다고 새로 사귄 친구들 때문에 그대를 잊은 것은 아니다   전문(p. 32)   ---------------------- * 『시와문화』 2024  ..

폭설/ 이건청

폭설     이건청    말들이  떼 지어 달려오더라  진부령 넘어  미시령 넘어, 말들이  달려와  쓰러지더라  무릎을 꿇더라  엎어지더라  겨울 바다는 오라고  오라고, 오라고  손짓하는데  마루턱에서 마루턱으로 허위허위 달려온  추운 날들이  폭설 되어  흩날리는데  일망무제, 수평선 뜬 곳까지 달려온 내 말들이  흔들리는 손짓들 쪽으로 달려와  퍽, 퍽, 엎어지며 흩날려 내리는  겨울 화진포    -전문(p. 20)  ---------------* 군산시인포럼 제4집 『바다의 메일』 에서/ 2024. 6. 5. 펴냄  * 이건청/ 196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실라캔스를 찾아서』『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 외 다수

붉은빛 서대/ 김왕노

붉은빛 서대      김왕노    바닥을 박차고 나왔다 장대 끝에서  노을로 꾸덕꾸덕 말라 맛 들어가며  몸은 붉게 물들어 간다.   바닥에 착 달라붙은 밑바닥 생활이었으나  온몸으로 꼬리에 꼬리를 치며  바닥을 차고 오른 것은 일생일대의 혁명  하나 그물을 피할 수 없는 서대였으므로  밑바닥을 쳤기에 아득한 장대 끝에 이르러  온몸에 소금꽃 피도록 바다를 바라본다.   입맛 잃은 세상에 짭쪼름한 서대찜으로  밥상에 놓인다 한들 한 번 바닥을 치므로  지고지순한 허공에 이르렀기에 후회 없다고  탕탕 큰소리치며 양상군자처럼 허공을  독차지하고 붉게 물들어가는 서대 한 마리      -전문(p.22)  ---------------* 군산시인포럼 제4집 『바다의 메일』 에서/ 2024. 6. 5. 펴냄  *..

커피하우스에서 생긴 일/ 이정현

커피하우스에서 생긴 일      이정현    문래역 모 카페에서 B를 기다리며 끄적인다  커피값 영수증에 오선을 그리고  높은음자리표랑 음표랑 쉼표 몽땅 그려 넣어도  지루함에 색다른 지루함으로 옮겨 앉는다   영수증을 뒤집어 글자가 가득 박힌 종이 위에    아메리카노는 쓰다 써서 맛있다, 고 쓴다  투 샷만큼 진환 기다림으로 말똥거릴 때  내 등을 치는 이, B다  환하게 안아주는 웃음이 마키아토처럼 일어나  내 손 위에 얹힌다  잘 포개어져 욜랑거리던 어느 긴 봄날.     -전문(p. 253)   ---------------------- * 『한국시학』 2024  여름(70)호 에서 * 이정현/ 2016년『계간문예』로 등단, 시집『점』외 3권, 평론집『60년대 시인 깊이 읽기』

주암정에서 뱃놀이/ 김다솜

주암정에서 뱃놀이      김다솜    오래된 유물 닮은 전설의 그 배는  소나무향기와 금천 물소리를 가득 싣고  연꽃 가득한 연못을 지키는 병풍입니다   거센 눈보라와 태풍에 사라지지 않은  한 폭의 풍경화는 장마와 가뭄을 견디고  뱃고동 소리 없이 항해하는 버팀돌입니다   주암정에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던  선비들을 꿈꾸는 미래로 초대를 했지요   21세 장원급제한 난재 채수蔡壽 6세손  채익하가 머무는 정자에 꽃과 새들이 모여  어기영차 꽃놀이와 뱃놀이를 즐겁게 합니다   그곳에 머물고 있는 귀한 배를 타고  채수 후손들은 경천섬 바라보는 낙동강  문학관 설공찬전축제 참석을 하셨지요      -전문(p. 246)   ---------------------- * 『한국시학』 2024  여름(70)호..

아무도 오지 않아서 좋은 여름 외 1편/ 김해화

아무도 오지 않아서 좋은 여름 외 1편      김해화    보냈다  그이들은 오지 않을 것이다   떠났다  그이들은 오지 않을 것이다   비우고 간 곳에 봉숭아를 심었다  채송화도 심었다   피지 않던 꽃들이 피었다  봉숭아도 채송화도 피었다  고향 떠난 뒤로 오랫동안 꿈꿔왔다   꽃밭에 비로소 비다운 비가 온다  아무도 오지 않아서 좋은 여름이다     -전문(p. 202)       ------------------------------    코로나 2021 추석    명절 맞네  외제차 고급차 줄을 서서 골목길 올라가네  환하시네 푸른 하늘 햇살   대문이라도 걸어 잠그고  12퍼센트 고소득층 통장잔고 23만 원 감추고 싶지만  세든 집 대문간에 문짝이 없네   어둔 방에 숨어 있자니 마당에 봉숭..

탄생/ 임솔내

탄생     임솔내    그 먼 길을 빠뜨릴까 봐   떨어뜨리고 올까 봐   손가락 발가락 다 챙겨 오느라   얼마나 애썼을까, 오 아가!     -전문(p. 64 & 사진 65)   ----------------------- * QR코드 낭송 시집 『홍녀』에서/ 2024. 5. 15. 펴냄 * 임솔내林率來/ 1999년 『자유문학』으로 등단, 시집 『나뭇잎의 QR코드』『아마존 그 환승역』등 5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