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밤바다 신은숙 울까 말까 할 때는 우는 게 낫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는 게 낫다 바람이 등을 떠미는 밤 동쪽으로 흘러와 해변의 그네에 앉으면 살아있음은 흔들리는 것이라는 걸 부서져 포말로 흩어질지라도 길게 누운 해안선 빛이 있는 곳으로 파도가 온다 칠흑 바다를 달리는 캉캉 주름들 말할까 말까 할 때는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게 낫다 어둠을 삼킬수록 환한 침묵의 달 파도 손잡고 해변을 걸으면 그림자 하나 묵묵히 따라오는데 마침내 달도 보이지 않고 화엄경 같은 밤바다만 출렁거린다 -전문(p. 119-120) -------------- * 여여시 3집 『꽃이라는 이름을 벗고』에서/ 2023. 11. 11. 펴냄 * 신은숙/ 1970년 강원 양양 출생, 2013년 ⟪세계일보⟫ 시 부문 등단, 시집『모란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