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우주적 경계/ 김지헌

검지 정숙자 2024. 1. 22. 01:19

 

    우주적 경계

 

     김지헌

 

 

  마켓에서 화초 몇 점 데리고 왔다

  화초들을 정리 중이라는

  나보다 몇 살 아래로 보이는 여자

  말기 암이라고 했다

 

  사랑만 쏟아 줄 것처럼

  감언이설로 마당을 채워간다

  저 고운 얼굴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휙휙 건너뛰는 시간을

  이만하면 잘 쓰는 거라고

  쏟아지는 햇빛을 마지막인 양 아껴 쓰는 거라고

 

  그녀는 그랬을 것이다

  내 앞에 도착했던 수많은 오늘을

  무심코 흘려보낸 시간을

  넘어지고 피 흘리며 달려 왔다고 할 수 있을까

 

  쓸쓸히 늙어가는 것과

  조금 일찍 가는 것의 간격은

  잊혀지는 속도 만큼일까

 

  누군가에겐 마지막 순간이 나에겐

  시작이 되기도 하는,

 

  제라늄과 다육이들 새집에 적응하느라

  구름처럼 잎을 피워내고 있다

  주인이 바뀌어도 꽃들은 맹렬하게

  제 삶을 끌고 갔다

    -전문(p. 7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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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여시 3집 『꽃이라는 이름을 벗고』에서/ 2023. 11. 11. <채문사> 펴냄

  * 김지헌/ 충남 강경 출생, 1997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심장을 가졌다』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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