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인터뷰>
시의 순교자, 박제천 시인
이혜선/ 시인
이혜선_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승에서 모습을 못 뵌 지 몇 달이 되었네요. 그래도 시인에게 죽음은 없고 그의 시를 통해 늘 부활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곳에서도 시와 함께 잘 놀고 계시지요?
박제천_ 그럼! 나는 거기서나 여기서나 어디서나 시가 있는 한 시와 함께 노느라고 바쁘고 행복하다네. 더구나 이곳에선 내가 좋아하는 장자도 노자도 한비자도,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를 그린 추사 노옹도 모두 만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새는 줄도 모른다네.
이혜선_ '가시덤불에 산삼 나듯이 새로 돋아니는 우리 문학 아카데미여'라고 축원해주신 미당 스승님도 만나고 붕새를 타고 장자도 만나셨지요? 남명南冥을 다녀오면서 매미와 비둘기의 놀림도 받았겠군요. 하긴 선생님은 이곳에서도 가면놀이 무지개놀이로 밤새는 줄 모르셨지요. 『산해경』의 「해외남경」 속에도 친구가 많지요?
박제천_ 한때는 해외 남경을 유람하느라고 공기로 마음속 말을 주고 받고, 떠나간 그대와 바람의 사랑을 하기도 했지요. 내 마음속에 숨겨둔 달빛과 만나서 먼저 떠난 마틸다(아내)도 만났지요. 이곳에선 달도 별도 가까이 있어서 함께 놀기가 좋은데, 참, 그곳에선 어젯밤에 슈퍼문이 떴다더군요.
이혜선_ 네, 오늘 선생님을 만나는 기쁜 일을 알려주려고 슈퍼문이 떴나 봅니다.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 시인은 정말 언어의 신神이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예술가는 제비와 같이 자유롭다'는 하이데거의 말대로 자기의 세계를 어디에도 구애됨이 없이 건설하는 진정한 예술가의 길을 느낍니다. 선생님은 동국대학교 4학년 재학 중(1966년)에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셨지요. 그 무렵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박제천_ 나는 고등학교 때 노자 장자 한비자 한시, 양주동의 고가연구古歌硏究 여요전주麗謠箋注 등을 다 읽고 거의 외웠어요. 물론 시작법詩作法도 공부했지요. 청계천5가 헌책방을 돌며 모두 섭렵하고 더 읽을 책이 없어서 못 읽었어요. 대학교에 입학하여 한없이 건방지고 오만한 마음으로 강의실에 앉아 있으려니 시시해서 견딜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강의실에는 거의 안 들어가고 술이나 마시며 돌아다니다가 결강하거나, 어쩌다 강의실에 있을 때는 코 골고 자다가 쫓겨났어요. 한번은 김기동 교수님 첫 시간에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외우면 A학점을 준다기에 내가 손들고 바로 외웠더니 교수님이 "너는 A학점이다" 하고 약속을 지키셨어요. 그래도 시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어서 세상을 좀 놀라게 할 시를 써보자 벼르고 있었지요. 군대에서 제대해서 와보니 집안 형편이 말이 아니게 어려워져 있었어요. 그래서 다락방에 박혀서 시를 쓰기 시작했지요. 1966년 추천 완료 후, 『현대문학』에서 1970년 10월호에 파격적인 지면 할애로 「장자시」 연작 33편을 발표해 주었어요. 1975년에 시집으로 묶어내었지요.
이혜선_ 네, 그때 그 시집으로 문단에 충격을 주고 장안의 지가紙價를 높였지요. 정한모 선생은 '장자시는 동양적인 것, 한국적인 것을 현대시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 좋은 예'로서, '쉬르에 가까운 표현기법을 주로 하여, 매 편마다 독립된 한 편으로서의 통일과 조화에 흐트러짐이 없다'며, '감각과 상상력과 언어구사의 3박자가 모두 탁월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상찬하였지요. 권택명 선생도 '박제천의 시는 우주적 웅혼함을 거느리면서도 구체적 감동의 장으로 독자를 이끈다'라고 평하셨어요. 「장자시」뿐만 아니라 선생님은 평생 동안 심혈을 기울여 좋은 시를 많이 발표하면서 평자들과 문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일반 독자 대중들로부터는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이 있었지요. 상징주의의 시조로 「만물조응Correspondances」을 노래한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의 산문시 「개와 향수병」이 생각납니다. 자신의 시를 이해 못하는 독자들에게 시중에서 제일가는 향수병을 냄새 맡게 했더니 놀라서 물러나 컹컹 짖는 개를 보면서 '너도 저 대중들과 똑같구나. 그들에게 미묘한 향료를 주면 성을 내니 '라고 한탄한 것처럼 독자에게 답답함과 아쉬움을 느꼈으리라 생각됩니다. 선생님이 쓰시면 '개' 대신에 '돌멩이들'에게 썼겠지요?(웃음)
박제천_ 그 보들레르가 내 마음을 그렇게 잘 표현했군요. 나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시를 쓰는 많은 시인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나는 진정으로 내 시를 이해하고 알아주고 공감해주는 몇몇 문인들과 독자들이 있어서 그리 외롭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시는 내가 좋아서 스스로 자기를 표현하고 즐기는 것이니까요.
이혜선_ 네. 저도 선생님의 시집 『천기누설』의 해설을 쓰면서 그 점에 초점을 맞추었어요. '한세상 신나고 즐겁고, 신명나게 살기로 했다··· 꿈결 속에 살다 본즉 사랑도 삶도 시도 그 무엇도 다 가능한 일이었다'라는 자신의 언술처럼 선생님은 꿈속에서 또 꿈을 꾸며 불가능이 없는 시의 삶을 살았지요. 마치도 심우도(尋牛圖 속의 인우구망人牛俱忘처럼 자아도 마음도 현실도 모두 잊고 유유자적 노니는 선禪의 경지, 거기서 머물지 않고 '꽃처럼 활짝' 핀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는 반본환원返本還源의 경지에 이른 선생님의 시 속에서 덩달아 저도 행복을 누렸습니다.
박제천_ 1984년 미국 아이오와대에 소재한 I.W.P.(국제창작프로그램)를 다녀와 문예진흥원 자료관장을 두 번째로 맡으면서 당시에 지도하게 된 문예강좌에 이어서, 1987년에 문학아카데미를 발족시키고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사숙(방산사숙)을 개설하게 되었어요. 당시에 대학마다 국문과는 설치되어 있었지만 창작보다 학문에 편중되어 있어서 창작 지망생들의 창작교육에 대한 열망을 흡수하지 못했지요. 그러한 열망에 힘입어서 상산사숙에서는 회원제로 문학창작 지망생들에게 문학훈련을 시키게 된 것입니다. 문학아카데미에서는 1988년 이래 <시의 축제>를 열어 시의 대중화와 시 보급에 주력해 왔고, 시인과 독자가 만나는 예술현장을 통해 새로운 교감의 장場을 만들어 왔어요. 매년 여름에 <숲속의 시인학교>를 개최해 지역사회교육의 장으로 문호를 개방하기도 했지요. 또 최근 몇 년 동안 유튜브에 <시인만세TV>를 개설해 원로 중진, 중견 시인을 대별 인터뷰해서 한국시 라이브러리를 구축해 왔어요(2013. 6월 현재 120명), 또 시전문 카페 <한국시문학 아카데미> <문학과 창작> <코리안 포엣> 등을 포털사이트 <다음>에 설치하여 종합적인 시문학 네트워크를 구축했어요. 내가 이승에 없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이혜선_ 시를 위해, 시 창작 공부하는 후진들을 위해 참 많은 일을 하시고 좋은 자료를 구축해 놓으셨습니다. 또 선생님은 '동국문학인회'의 회장을 맡아서 장강대하를 이루는 동국문학의 발전에도 기여하셨지요. 포털에 <동국문학> 카페를 개설해서 계속 관리해주셔서 제가 동국문학인회장을 맡았을 때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뒤늦게나마 감사드립니다. 『문학과 창작』은 1995년에 등록되었더군요.
박제천_ 1995년에 시문학종합지로 창간되어 좋은 작품을 쓰고 발표하는 문단 분위기를 선도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우리 시의 발전에 기여하는 시인들에게 한국시문학상,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등을 오랫동안 수여해 왔어요.
이혜선_ 참으로 우리 문학 발전을 위해 큰일을 꾸준히 해오셨습니다. 선생님은 운명하시기 전날 밤까지 사숙의 문하생들을 가르치셨으니, 시와 제자 지도에 말 그대로 평생을 바치셨습니다. 대학 4학년 재학 중에 시인이 된 후로 평생 시를 쓰고, 문예진흥원과 출판사 등에서 문학을 위해 일을 하고, 시를 가르치고, 시창작자와 독자를 이어주는 잡지를 만들고, 문학상을 수여하고, 죽음에 이르도록 시를 쓰다가 이승을 떠나셨습니다. 선생님은 가히 시에 순교하신 분, 시의 순교자라고 부를 만합니다. 평생 시를 가르쳐 온 스승으로서 문학아카데미 회원을 비롯해서 후배 시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제천_ 시는 꿈꾸는 시인의 것입니다. 꿈꾸는 시인을 중심으로 시는 진화합니다. 여러분의 꿈이 어떤 오브제를 만나서 진화하든, 진화하는 그 꿈을 응원합니다.
이혜선_ 오랜 시간 함께 말씀 나누다 보니 선생님이 이승에 다시 오신 듯합니다. 죽음으로 인해 생의 흔적은 흩어져 무화無化되겠지만, 시인은 남겨진 작품 속에서 언제나 부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오래오래 이승에 남기신 시를 통해 부활하시기 바랍니다. (p. 206~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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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3-1월(657)호 <가상 인터뷰/ p. 206~210(전문)> 에서
* 이혜선/ 경남 함안 출생, 1981년『시문학』추천, 시집『흘린 술이 반이다』『운문호일雲門好日』『새소리 택배』『神 한 마리』 등, 저서『이혜선의 시가 있는 저녁』『문학과 꿈의 변용』『아버지의 교육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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