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외 1편
진서윤
벚나무 아래 나무 벤치
햇살 장판 깔렸습니다
손을 대보면 미열의 이마를 짚었던
손바닥입니다
세상의 벤치들은 모두 초대장 같습니다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빈 들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연두색 칠이 벗겨진 결마다
꽃무늬가 촘촘 박힙니다
불면 날아가는 봄날일까요 아니면
털갈이 중인 순한 짐승일까요
다시 계절이 바뀌었는데
가난한 가지에서 새처럼 날아든
나뭇잎만 들뜨고 있습니다
누군가 앉았다 갈 듯하여
막 시작된 봄날의 자리
작은 돌멩이 같은
비밀 하나 눌러놓습니다
-전문(p. 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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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 아름답다는 말
갈증 같기도 하고
성취 같기도 한
필연의 날들을 보냈습니다
추억으로 봉합된 몇 개의 기억에서
서로 어깨를 다독이기도 했습니다
어깻죽지에 반짝이는 날개는 무거웠지만
희망의 문양을 새기며 미래에 중독되기도 했습니다
익숙한 이별은 없습니다
헤어짐의 자리마다 늘 새로운 아쉬움이 덧나지만
먼 기억을 거슬러
함께 일행으로 걸어온 시간 때문에 참 따뜻합니다
떠남과 머무름의 경계가 한 자리이듯
하나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리겠지요
좀 치열하게 살았던들 어떻습니까
바람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다만
마음의 행보를 따랐을 길에
새의 날갯짓 같은 따뜻한 박수를 보냅니다
생이 아름답다는 말을
이즈음에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전문(p. 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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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 『여기까지가 인연입니다』에서/ 2024. 1. 10. <문학의 전당> 펴냄
* 진서윤/ 경남 함안 출생, 2013년 ⟪경남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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