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나무/ 김유자

검지 정숙자 2024. 1. 22. 01:05

 

    나무

 

    김유자

 

 

  내가 들어가기에는 나무가 작았다

  내가 작아서 나무가 들어오다 부러졌다

 

  나란히 서있으면 안 되는 거야?

 

  누가 먼저 그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나란히 

 

  서로의 옆에 서도 나란해지지 않았다

  흔들리거나

  벗어나거나

  둘 다 휘청거리거나

 

  휘청거리는 날을 우리는 좋아한 것 같다

  내 생각뿐일 수 있다

 

  나에게서 잎이 자라고 지고 꽃 피고 열매 맺는 한 해가

  있기도 없기도 했다 나무는

  웃다가도 멈춰 울고는 했다

  햇빛은 마른 강줄기로 남아있고

  밤은 조금씩

  자신을 떼어서 물관에 숨겨두곤 했다 우리가

 

  정말 서로에게 들어가길 원했는지 알 수 없다

 

  서로를 오래 바라보던 날들이 있었다

     -전문(p. 61-62)

 

    --------------

  * 여여시 3집 『꽃이라는 이름을 벗고』에서/ 2023. 11. 11. <채문사> 펴냄

  * 김유자/ 충북 충주 출생, 2008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고백하는 몸들』『너와 나만 모르는 우리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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