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x / 정숙자 대상 x 정숙자 무無의 공간 우주에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지름 십억 광년의 공간이 있다고 한다 그 많은 별을 품고도 우주마저도 한구석 쓸쓸함이 그렇다 한다 뭇 성단, 행성과 항성, 초신성의 폭발이 모두 거기서 움텄나보다 여기 태양의 변두리에서 돌로 꼽히든 꽃으로 돌든 울창한..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4.07.11
액체계단/ 정숙자 액체계단 정숙자 직각이 흐르네 직각을 노래하네 직각 직각 직각 한사코 객관적인 도시의 계단들은 경사와 수평, 깊이까지도 하늘 깊숙이 끌고 흐르네 날개가 푸르네 날개가 솟구치네 다음 다음 다음 기필코 상승하는 건축의 날개들은 수직과 나선, 측면까지도 성운 깊숙이 깃을 들이네 ..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4.07.10
만들어진 침묵/ 정숙자 만들어진 침묵 정숙자 떠도는 생각 밀어 넣은 말 비극이 된 사랑 바다로 간다. 약속한 바 없건만 모두 바다로 간다. 바 다에 가서도 떠돌 뿐 밀어 넣을 뿐 출렁거릴 뿐 그리하여 맨 처음 침묵을 만든 건 수평선이다 그리하여 맨 처음 침묵을 간직한 건 수평선이다 만들어지는 거라고 만드..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4.03.15
객담 및/ 정숙자 객담 및 정숙자 나 자신이 내 형틀이다 곧추 일어나 양팔 벌리면 지체 없이 열십자가 드러난다 태어나기도 이전에 벌써, 나는 내 형틀을 낳고 형틀은 형량을 끌고 형량은 삶을 몰았다 홧홧하거나 헛헛한 돌풍 그것이 때론 가슴을 이마를 등을 치기도 했다 지금 창밖에선 가을이 타고 내 ..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4.01.03
지성인/ 정숙자 지성인 정숙자 찾으려 했다 항상 만났다 썩 멀지 않은 곳에서 그는, 가슴 없어도 새들을 품죠. 목소리 없어도 노래 굴리고 눈 없어도 이슬 맺힌답니다. 날개 없지만 구름까지 솟구치 고요. 잎사귀의 귀로도 다 들을 뿐더러 번개가 때려도 비 관/원망/반격하는 법 없다 합니다. 뿐일까요? (..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3.12.09
순환과 연쇄/ 정숙자 순환과 연쇄 정숙자 텍스트는 떠난다 테스트가 되어 돌아온다 돌아온 테스트는 다시 텍스트가 되고 그 텍스트 또한 또 다른 테스트로 재현된다 모든 실재와 현상은 ∴ 테스트 텍스트라는 가설이 가능하다 무엇이든 어떻든 어찌됐든 테스트는 텍스트로, 텍스 트는 테스트로의 순환선에 ..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3.12.09
일단 이것을 나비라고 부른다/ 정숙자 일단 이것을 나비라고 부른다 정숙자 언뜻 펼치면 두 쪽이지만 수십 혹은 수백 쌍의 날개로 구성 됨 각 날개마다 고유번호가 존재, 치밀히 계산한 선과 각 으로 활주로를 밀어 올림. 누군가의 정신이기도 육체이기 도 한 이 나비는 곧 사라질 수도, 천년토록 살아남을 수도 무한 복제를 통..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3.09.11
젖었으므로 빛난다/ 정숙자 젖었으므로 빛난다 정숙자 프로펠러가 별들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저것을 누가 강물이라 엮는가 (폭포 이후 저것은 수평으로 흐르는 비행 물체다) 귀 기울여보라 젖은 밤 가로등 아래 아스팔트도 벤치도 길섶 풀잎 돌멩이들도 윙윙윙 빛 을 뿌린다 활주로 따윈 없어도 그만, 제각기 섬광..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3.05.11
역광/ 정숙자 역광 정숙자 친절이라는 거 그거 하나 빼면 온전하다 이제부터 다른 거 집어치우고 거기 주력해야겠다 친절 중에서도 딴 친절 다 놔두고 연분홍 꽃분홍 내버려야겠다 나눠가진 분홍들 낯선 작살로 돌아오는 밤 내일은 무기상에 들러 탱크 한 대 사와야겠다 밀어버려야겠다 극한상황에서..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2.09.10
악마의 바늘/ 정숙자 악마의 바늘 정숙자 총알이 나를 뚫고 지나가네 내 몸에선 피 한 방울 나지 않네 어떤 멍울도 흉터도 없어 의사를 찾아갈 필요도 없네 나는 훨씬 먼 곳에 와 있네 총알은 너무 먼 곳에서 날아왔기에 닳아버린 것이라네 총알이란 예전엔 흉기였지만 이제 한갓 기호일 뿐이라네 얼마나 힘들..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2.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