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과 연쇄
정숙자
텍스트는 떠난다
테스트가 되어 돌아온다
돌아온 테스트는 다시 텍스트가 되고
그 텍스트 또한 또 다른 테스트로 재현된다
모든 실재와 현상은 ∴
테스트 텍스트라는 가설이 가능하다
무엇이든 어떻든 어찌됐든 테스트는 텍스트로, 텍스
트는 테스트로의 순환선에 놓인다. 그 궤도를 흔히 역경/
질곡이라 상정한다. 지불된 고통과 절망의 매듭으로 성숙
을 기대하지만 우주의 질서는 단순 함수가 아니다. 어떤
텍스트 테스트에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인칭 생존 파일은
매일매일 새로 쓰고 고쳐 쓰고 지우고 다시 써야만 한다.
생활은 신의 언어,
기상 조건 초월하는 파일럿이 어디 있으랴
정답을 모른 채
흔들리는 구체 위에서
방황하다 돌아가는 텍스트와 테스트
바람에 섞인 아트(art)들
제 등을 뚫고 날아간 매미도 한 줄 텍스트를 남겼다. 그
역시 오랜 테스트의 후일담이려니. 봄가을은 빨리 돌아가
고 겨울은 길다. 이 밤에 또 혈육이 떠나고 있다. 텍스트이
기도 테스트이기도 했던 한 질의 생애. 스스로의 몫에 갇
혀 뜻대로 울 수도 없었던 그는 어느 하늘 어느 태양 어느
구름을 빌려 맺히고 쌓인 잔물결 풀어 놓을까.
비운에 갈빗살 털릴 때마다
신의 언어에 귀 기울인다
마지막 남은 귀뚜리가 성실히 운다
저 역시 제 그늘을
최후까지 최선을 다해 긁는가
-『시와사람』 2013-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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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 파란>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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