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곡선/ 정숙자 과잉곡선 정숙자 실족 없다 온몸 뒤져도 굴절도 없다 두고 온 수족으로 거뜬히 비탈을 넘고 바람을 추월한다 절벽, 틈서리, 풀숲… 어디라도 스민다 돌출 없다 비늘 한 잎 덧대지 않았다 신은 저이를 만드는 데 유독 공들였을까? 맨 마지막에 구상했을까? 그런 만큼 '완벽'을 추구했을까? ..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6.02.17
유령시티/ 정숙자 유령시티 정숙자 사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간혹 아주 간혹 있었다 대개 허수였다 그들은 반짝거렸지만 알 수 없었다 눈 어딘가 알 수 없음을 품고 알 수 없는 사이 스며들 었다 파릇한 손이라도 나눠 갖는 저녁이면 한층 무거운 내 일이 왔다 사람사람이 (알 수 없음이) 알 수 있음이 ..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5.12.08
제2국면/ 정숙자 제2국면 정숙자 순간이 순간을 뺏어간다 순간순간이 아니라면 무엇이 과연 그것을 앗아갈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구르는 강 어쩔 수 없는, 우리는 모두 여럿의 눈을 가지고 있다. 날카로운 눈, 싱 거운 눈, 짚이지만 참는 눈, (그 외에도) 왼쪽으로 여민 눈, 정면 지향의 눈, 화살쯤 느긋이 ..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5.12.08
풍크툼, 풍크툼/ 정숙자 풍크툼, 풍크툼 정숙자 끼익— 렌즈에 잡힌 빨간 운동화 갑작스런 스크래치에 지느러미가 긁혔다 더 이상 운동화이기를 거부하고 꽉 끼는 발목 벗어버리고 금붕어로 깨어난다 배경도 몽땅 스크래치 스쳤지, 만 샐비어 두 마리만이 살아 숨 쉰다 소녀야… 소녀야… 경쾌 발랄 순식간에..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5.10.13
무중력상태로의 진입을 위한 밤들/ 정숙자 무중력상태로의 진입을 위한 밤들 정숙자 예민(銳敏)은 차원입니다 걸핏 통증을 분산하지만 추스르고 나면 궤도가 되기 도 하죠 싸락눈 들이치는 텅 빈 밤 창가에 놓인 촛불을 보았습니다. 촛불은 새어 드는 바 람결 따라 (어쩔 수 없이) 흔들렸습니다. 조금씩 휘청거리 다가 긴장하다가 ..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5.09.04
결여의 탄력/ 정숙자 결여의 탄력* 정숙자 없는 것이 우리의 눈 뒤에 있다 그것이 우리를 기다린다 바위보다 하늘보다도 뒤쪽에 항상 저쪽에 빠뜨림—그것은 어떤 분의 가장 치밀한 카드 모든 이에게 골고루 흩뿌린 사과, 혹은 사다리 끊임없이 올라서지만 따고 나면 금세 더 붉게 열리는 등불, 휘청 사다..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5.09.04
현재의 행방/ 정숙자 현재의 행방 정숙자 현재는 측근이며 최측근이다 옆 뒤쪽에 위아래에 멀리 또는 가까이 들어차 있다 그런데 잡히지 않는다 닿지 않는다 왜일까? 빈틈없이 다가오지만 즉시 떠나는 그들 무엇 때문에 어디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일까? 솔직히 부는 게 바람―, 정확히 흐르는 게 강물이라면 ..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5.03.05
모레의 큐브/ 정숙자 모레의 큐브 정숙자 하루하루가 사각으로 이어진다 모서리에 가끔 햇빛이 고이기도 한다 하루하루는 내 몸에 붙어있지만 정작 그 하루하루의 색 깔을 누가 돌려 맞추는지는 확실치 않다. 뚜두둑! 뼈들이 틀어지면서 색깔이 어긋난다. 허어, 내 하루하루가 내 하 루하루가 아니란 말인가? ..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4.12.13
김윤정_'나'를 이루는 것들, 타자와 자아 사이의 상상력 '나'를 이루는 것들, 타자와 자아 사이의 상상력 김윤정 근대에 대한 반성과 함께 이루어졌던 주체에 관한 논의는 자아를 이루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유가 비윤리적인 것임을 보여주었다. 이성적 사유에 의한 주체 중심주의는 세계를 이끌어가는 원인이었지만 다른 한편 비주체들을 억압하고 파괴하는 부정적 세력이기도 하였다. 이성을 소유한 주체들에 의해 비주체들은 주변인으로서 침묵과 추종을 요구받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근대 내내 절대 권위를 지켜왔던 이성이란 특정 시대에 의해 지지되던 인간의 특정 성질에 해당한다. 그것은 사유의 일 양상이고 상태의 한 표현이다. 때문에 그것은 권장되고 양성되는 것일 뿐 인간의 존재 전체를 말해주지 못한다. 이성이라는 특정 양식에 비해 인간은 훨씬 더 복잡하고 다단하다는 것..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4.10.14
파생/ 정숙자 파생 정숙자 두 팔… 높이… 든다 만세일까 항복일까 절규일까 나노초에 포착/고정된 가면 유추가 배제되었다. 어떤 단서도 제공받을 수 없는 근 거—순전히 타자의 몫이 되고 말았다. 택해야 할까. 원형? 마름모? 사다리? 결정만 하면 된다. 누구든/뭣이든 그것 이 곧 우리의 것이 될 ..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4.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