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바늘
정숙자
총알이 나를 뚫고 지나가네
내 몸에선 피 한 방울 나지 않네
어떤 멍울도 흉터도 없어 의사를 찾아갈 필요도 없네
나는 훨씬 먼 곳에 와 있네
총알은 너무 먼 곳에서 날아왔기에 닳아버린 것이라네
총알이란 예전엔 흉기였지만 이제 한갓 기호일 뿐이라네
얼마나 힘들여 조준했을 것인가
그러나 나는 영 총알하고는 셈이 맞지 않는 곳에 와 있네
이 총알이 누가 보낸 것인지 알 수도 없네
그렇지만 총알인 것만은 확실하네
옛날 옛날에 봤던 기억이 있네
-『현대시』2012-7월호
--------------
*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젖었으므로 빛난다/ 정숙자 (0) | 2013.05.11 |
---|---|
역광/ 정숙자 (0) | 2012.09.10 |
태양의 하트/ 정숙자 (0) | 2012.07.11 |
관, 이후/ 정숙자 (0) | 2012.06.05 |
풀의 행성/ 정숙자 (0) | 2012.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