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_學/ 정숙자 무릎_學 정숙자 깨달으려고 나무 아래 앉았던 게 아니라 깨달았기에 거기 정박한 거다 비운다는 추측은 좀 멀지 마음을? 생각을? '멈춤' 정도면 그런대로 대치어가 되지 않을까 끊임없는 생각과 생각, 뒤엉키는 마음과 마음, 쑥밭으 로 놔둘 순 없어 '멈추자, 멈추자'고 한 무릎 괄호쳤던 ..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6.11.07
슬픔은 울어주기를 원치 않는다/ 정숙자 슬픔은 울어주기를 원치 않는다 정숙자 넘어서라… 넘어서라… 되짚는다 슬픔은 나를 넘어서라고 모서리 모서리 굴리며 돌아온 태풍, 그 억센 덩굴들 휘 돌고 간 뒤 밤새워 노 젓는 잎새들에게 슬픔은 빠져나가라… 빠져나가라… 귀띔한다 절대로 나에게 걸려들어선 안 된다고 겨우 매..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6.09.03
시간의 충돌/ 정숙자 시간의 충돌 정숙자 천 년 전에 출발한 시간이 있다 천 년 전에 출발한 그 시간은 무수한 시간과 시간 사이를 뚫고 이곳에 왔다 내 곁을 지나는 지금 이 순간도 천 년 전에 출발한 시 간일 거야 천 년 전 그 시간은 내가 빚었을 수도, 다른 누군가가 보낸 것일지도 몰라 희한한 맛과 모양과 ..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6.07.24
균열/ 정숙자 균열 정숙자 인간을 통해 갖가지 의지를 표출하는 신 그는 정작 지상에 태어나지 못하는 인간이다 물이 든 유리병을 공중에 심었다 유리병에선 곧 뿌리가 나고 이파리도 나풀거릴 것이다 유리병나무가 된 유리병은 머지않아 물 먹은 뿌리와 잎새들을 흔들어 젖음이 뭔지 따뜻함이 뭣인..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6.07.09
바다는 무엇을 말하는가/ 정숙자 바다는 무엇을 말하는가 정숙자 눈물은 심장에 맺히는 것이었다 거기 고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동맥을 타고 올라온 모든 눈물은 피눈물이다 몇 밤 몇 낮 노출도 없이 때로는 긴 세월 발톱 끝까지 휘도는 눈물 쿵, 쿵, 쿵… 맥박이 뛸 때마다 붉어지다 검어지다 파래지다 하얘지다 결국 ..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6.06.25
인칭 공간/ 정숙자 인칭 공간 정숙자 홀수이거나 복수로 작동한다 두 공간이 겹쳐지면 사랑, 잘못 겹쳐질 경우 몇 계절 건너뛴 한파가 낀다 공간과 공간들, 한 칸 한 칸 그 모두가 독특한 색과 소리와 내면을 지닌 유일공간으로서 무한공간의 한 지점에 위치한다 공간과 공간들, 한 칸 한 칸 그 모두가 절대..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6.06.10
정숙자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유령시티」/ 작품론 : 정다인 『시와경계』2016-봄호 [지난 계절의 시 리뷰]/ 정다인(시인) 유령시티 정숙자 사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간혹 아주 간혹 있었다 대개 허수였다 그들은 반짝거렸지만 알 수 없었다 눈 어딘가 알 수 없음을 품고 알 수 없는 사이 스며들었다 파릇한 손이라도 나눠 갖는 저녁이면 한층 ..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6.04.06
살아남은 니체들/ 정숙자 살아남은 니체들 정숙자 그들, 발자국은 뜨겁다 그들이 그런 발자국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그런 불/길이 맡겨졌던 것이다 오른발이 타버리기 전 왼발을 내딛고 왼발 내딛는 사이 오른발을 식혀야 했다 그들에게 휴식이라곤 주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도움이 될 수도 없었다 태어나..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6.03.27
칼의 눈/ 정숙자 칼의 눈 정숙자 들이치는 저기압 받아내려면 많은 칼 있어야겠지 그 푸름- 그 구름- 지켜내려면 많은 칼 날려야겠지 그의 동쪽은 그 칼끝에서 나온 거겠지 그의 침묵은 그 칼집에서 익은 거겠지 지층 어딘가 삼각지대 돌고 있지만 그 회전-칼 아니었다면 그는 이미 그가 아니었겠지 칼일..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6.03.27
육식성, 시/ 정숙자 육식성, 시 정숙자 그마저 새빨간 살을 먹어야 하다니, 꼬리 긴 신음 쬐어야만 꽃 피울 수 있다니, 그렇다면 내 어찌 마지막 한 줄기의 절규인들 쾌히 감수하지 않을 수 있으랴. 어떤 이가 걸어간 마지막 길은 어떤 이가 끌고 갈 첫길이 되기도 한다 모든 죽음은 표절이다 전쟁, 자살, 그보..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2016.02.17